Then, when I was about eleven, I went to stay with Grans in Montauk for four weeks while August was having his big jaw surgery.
내가 열한 살쯤 되었을 때, 어거스트가 큰 턱 수술을 받는 사 주 동안 나는 몬탁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 머물러 갔다.
어기가 큰 수술을 받는 동안 비아는 외할머니랑 오붓한 시간을 보내게 돼. 집안이 온통 수술 때문에 정신없을 때, 비아만 평화로운 몬탁으로 탈출한 셈이지. 일종의 '누나 전용 안식월'이었다고나 할까?
This was the longest I’d ever been away from home, and I have to say it was so amazing to suddenly be free of all that stuff that made me so mad.
집을 떠나 이렇게 오래 지낸 적은 처음이었고, 나를 그토록 화나게 했던 그 모든 것으로부터 갑자기 자유로워지는 것이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어기 없는 세상은 비아에게 유토피아였어. 사람들의 무례한 시선이나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니까 숨이 탁 트이는 거지. 솔직히 동생은 좋지만 그 '상황'들은 비아를 미치게 했으니까.
No one stared at Grans and me when we went to town to buy groceries. No one pointed at us. No one even noticed us.
식료품을 사러 시내에 나갔을 때 아무도 할머니와 나를 빤히 쳐다보지 않았다. 우리를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를 눈여겨보는 사람조차 없었다.
'평범함'이라는 게 이렇게 달콤한 건지 비아는 처음 알았을 거야. 아무도 안 쳐다보는 게 세상에서 제일 편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투명 인간이라도 된 듯한 평화로움을 만끽하고 있어.
Grans was one of those grandmothers who do everything with their grandkids.
외할머니는 손주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함께 해주는 그런 할머니 중 한 분이었다.
비아의 외할머니는 쿨내 진동하는 슈퍼 할머니였어. 손주가 하자고 하면 다 해주는 무한 긍정의 아이콘! 비아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아군이자 베프 같은 존재였지.
She’d run into the ocean if I asked her to, even if she had nice clothes on.
내가 부탁하면 할머니는 좋은 옷을 입고 있어도 바다로 뛰어들곤 했다.
외할머니는 진짜 비아의 '예스맨'이었나 봐. 명품 옷을 입었든 말든 손녀가 "할머니, 바다 가자!" 하면 고민도 안 하고 입수! 이런 할머니 있으면 진짜 인생 든든하지 않겠니? 손녀 사랑이 거의 수영 국가대표급이야.
She would let me play with her makeup and didn’t mind if I used it on her face to practice my face-painting skills.
할머니는 내가 당신의 화장품을 가지고 놀게 해주었고, 내가 페이스 페인팅 연습을 하느라 당신의 얼굴에 화장품을 칠해도 개의치 않았다.
여자들에게 화장품은 자존심이자 생명인데, 할머니는 비아의 예술 혼을 위해 기꺼이 본인 얼굴을 도화지로 내주셨어. 손녀가 얼굴에 낙서를 해도 허허 웃으시는 할머니... 진짜 찐사랑의 결정체 아니니?
She’d take me for ice cream even if we hadn’t eaten dinner yet. She’d draw chalk horses on the sidewalk in front of her house.
아직 저녁도 먹지 않았는데도 아이스크림을 사주러 데려가기도 했다. 할머니는 집 앞 보도에 분필로 말 그림을 그려주곤 했다.
저녁 밥상 차려놓고 아이스크림부터 먹는 일탈! 이게 바로 할머니 댁에 가는 묘미 아니겠어? 길바닥에 분필로 말 그림까지 같이 그리셨다니, 할머니는 비아에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베프였던 게 분명해.
One night, while we were walking back from town, I told her that I wished I could live with her forever.
어느 날 밤, 시내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할머니와 영원히 함께 살고 싶다고 말했다.
행복 수치가 한계치를 뚫어버린 비아의 진심 어린 고백이야. 어거스트 없는 세상, 오직 나만 바라봐주고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할머니 곁이 얼마나 따뜻했으면 영원히 살고 싶다고 했을까. 뭉클하지 않니?
I was so happy there. I think it might have been the best time in my life.
나는 그곳에서 무척 행복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비아에게 몬탁에서의 4주는 단순히 방학이 아니었어. 처음으로 '동생 중심의 우주'에서 탈출해 본인만의 삶을 누린 황금기였지.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은 인생의 리즈 시절이야.
Coming home after four weeks felt very strange at first.
4주 만에 집에 돌아온 것은 처음에는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즐거운 여행 뒤에 오는 현실 복귀의 후유증! 몬탁의 평화로움에 젖어 있다가 갑자기 어거스트의 집으로 돌아오니 비아는 마치 다른 차원으로 워프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거야. 이제 다시 '태양' 주변을 돌아야 하는 현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거든.
I remember very vividly stepping through the door and seeing August running over to welcome me home,
문을 들어서며 어거스트가 나를 반기러 달려오는 모습을 본 것이 아주 생생하게 기억난다.
4주 만의 귀가! 할머니 댁에서의 꿈같은 시간을 뒤로하고 현실 세계로 로그인하는 순간이야. 문을 열자마자 비아를 맞이한 건 '누나 바라기' 어거스트였지. 보통 이산가족 상봉급으로 감동적이어야 할 장면인데, 비아의 기억 속에선 뭔가 다른 느낌으로 남아있어.
and for this tiny fraction of a moment I saw him not the way I’ve always seen him, but the way other people see him.
그리고 아주 잠깐, 찰나의 순간 동안 나는 어거스트를 내가 늘 보던 방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보는 방식 그대로 보게 되었다.
비아에게 '현타'가 온 순간이야. 4주 동안 평범한 세상에 있다 오니까, 가족이라서 씌워져 있던 '사랑의 콩깍지' 필터가 일시적으로 해제된 거지. 남들이 어거스트를 볼 때 느끼는 그 낯설고 충격적인 시선, 그걸 비아도 느껴버린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