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adman can have ideas which remind one of Plato,
“미친 사람도 플라톤을 연상시키는 생각을 할 수 있고,”
and a pious little boy in a Moravian boarding school will recreate in his thought profound mythological ideas
“헤른후트 파 기숙학교의 경건한 어린아이도 자신의 생각 속에서 심오한 신화적 관념들을 재현해낼 수 있지.”
헤른후트 파(Moravian Church)는 18세기 초 독일에서 형성된 개신교의 한 종파로, 지식보다는 마음의 경건함을 강조합니다. 작가 헤르만 헤세 역시 이러한 엄격한 경건주의 가문에서 자랐기에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기도 하죠.
which occur in the gnostics or in Zoroaster.
“그노시스파나 조로아스터교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생각들 말이야.”
그노시스파(Gnostics)는 신비로운 영적 지식을 강조한 초기 기독교의 한 종파이며, 조로아스터교(Zoroaster)는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입니다. 피스토리우스는 인류가 쌓아온 모든 정신적 유산이 우리 내면에 이미 잠재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But he does not realize it! He is a tree or a stone, at best an animal, as long as he does not know it.
“하지만 본인은 그걸 깨닫지 못해! 그것을 알지 못하는 한, 그는 나무나 돌, 기껏해야 짐승에 불과한 거야.”
But, when the first spark of this knowledge glimmers in him he becomes a man.
“하지만 이 지식의 첫 불꽃이 그 안에서 희미하게 빛날 때, 그는 비로소 인간이 되는 거지.”
You will not consider all the two-legged creatures who walk out there in the street as human beings,
“자네는 저기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저 두 발 달린 생물들을 전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simply because they walk erect and carry their young nine months in the womb?
“그저 직립 보행을 하고 새끼를 아홉 달 동안 배 속에 품고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말이야.”
Look how many of them are fish or sheep, worms or leeches, how many are ants or bees.
“봐 봐. 저들 중 얼마나 많은 이가 물고기나 양, 벌레나 거머리인지, 또 얼마나 많은 이가 개미나 벌인지 말이야.”
Well, in reach of them are the possibilities of becoming human creatures, but only when they feel this,
“글쎄, 그들에게도 인간이 될 가능성은 열려 있어. 하지만 오직 그것을 느낄 때,”
it is only when, if even in part, they learn to make them conscious, that these potentialities become theirs.”
“즉 아주 일부분이라도 그것을 의식하는 법을 배울 때에만 비로소 그 잠재력은 자신의 것이 되는 거라네.”
Our conversations were somewhat after this style. They seldom taught me anything completely new, anything absolutely surprising.
우리의 대화는 대략 이런 식이었다. 그 대화들이 내게 완전히 새로운 것이나 아주 놀라운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But all, even the most banal, hit like a light persistent hammer-stroke on the same point in me,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조차 내 안의 같은 지점을 가볍지만 끈질긴 망치질처럼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