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nly reason I didn’t shake more was because the Portuguese leaned my back against his chest and held me by the shoulders, firmly but gently.
내가 더 이상 떨지 않았던 유일한 이유는 포르투갈 아저씨가 내 등을 자기 가슴에 기대게 하고,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내 어깨를 잡아 주었기 때문이었다.
‘It won’t hurt much. When it’s over, I’ll take you for a soda and sweets.
“많이 아프지는 않을 거다. 다 끝나면 소다수랑 맛있는 걸 사줄게.”
If you don’t cry, I’ll buy you some sweets that come with trading cards.’
“울지 않으면 딱지가 들어있는 과자도 사주마.”
당시 브라질에서는 과자나 사탕 안에 영화배우나 축구선수의 사진이 담긴 수집용 카드(딱지)가 들어있는 제품이 아이들에게 큰 인기였습니다.
I mustered up all the courage I could. The tears streamed down my face and I let them do everything.
나는 낼 수 있는 용기를 다 쥐어짜 보았다. 얼굴 위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지만, 나는 그들이 하자는 대로 몸을 맡겼다.
They gave me stitches and even an anti-tetanus injection.
사람들은 내 상처를 꿰매고 파상풍 예방 주사까지 놓았다.
I struggled against the desire to throw up. The Portuguese held me tight as if he wanted to take on a little of my pain.
나는 자꾸만 올라오는 구토를 참으려 애썼다. 포르투갈 아저씨는 내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가져가려는 듯 나를 꽉 안아 주었다.
He mopped my sweaty hair and face with his handkerchief.
그는 손수건으로 땀에 젖은 내 머리카락과 얼굴을 닦아주었다.
It felt like it was never going to end. But it did eventually.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과정이 끝났다.
When he took me to the car, he was satisfied. He had done everything he’d promised.
나를 차로 데려가면서 아저씨는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는 약속한 모든 것을 지켜주었다.
Except that now I didn’t want anything. It was as if my soul had been torn out through my feet.
하지만 정작 나는 이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마치 내 영혼이 발바닥을 통해 빠져나가 버린 것만 같았다.
‘You can’t go to school now, squirt.’ We were in the car and I was sitting very close to him,
“꼬마야, 지금은 학교에 갈 수 없겠구나.” 우리는 차 안에 있었고, 나는 아저씨 곁에 바짝 붙어 앉았다.
leaning against his arm, almost getting in the way of his driving.
아저씨의 팔에 몸을 기대고 있어서 하마터면 운전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