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ree o'clock (Hello had left but was supposed to come back later), the doorbell rang.
3시쯤 (헬로는 갔다가 나중에 다시 오기로 했어), 초인종이 울렸어.
드디어 사건의 발단! 일요일 오후 3시, 헬로와의 달콤한 데이트를 기다리던 안네에게 운명의 초인종이 울리는 순간이야. 평범한 초인종 소리가 앞으로 닥칠 엄청난 시련의 서막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I didn't hear it, since I was out on the balcony, lazily reading in the sun.
난 그때 발코니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햇볕 아래 책을 읽고 있어서 종소리를 듣지 못했지.
집안이 발칵 뒤집히기 일보 직전인데, 우리 안네는 세상 평온하게 독서 삼매경이었나 봐. '나른한 오후의 독서'라니, 이게 정말 폭풍 전야의 마지막 평화였을지도 몰라.
A little while later Margot appeared in the kitchen doorway looking very agitated.
잠시 후, 마르고트 언니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주방 문간에 나타났어.
평소엔 침착한 우등생 마르고 언니가 이렇게 당황해서 나타나다니! 안네의 평화로운 독서 시간은 이걸로 끝이야. 언니의 표정만 봐도 뭔가 대형 사고가 터졌다는 걸 직감할 수 있지.
“Father has received a call-up notice from the SS,” she whispered.
“아빠한테 SS에서 소환장이 왔어.” 언니가 속삭였어.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어. '소환장'이라니, 유대인들에게 이 단어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거든. 언니가 속삭인 건 혹시라도 밖에서 누가 들을까 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기 때문일 거야.
“Mother has gone to see Mr. van Daan” (Mr. van Daan is Father's business partner and a good friend.)
“엄마는 반 단 아저씨를 만나러 가셨고.” (반 단 아저씨는 아빠의 사업 파트너이자 좋은 친구야.)
엄마가 급하게 아빠 친구네로 달려가신 걸 보니, 이제 정말 숨어 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비상사태가 선포된 거지. 반 단 아저씨 가족과는 이제 운명 공동체가 될 예정인가 봐.
I was stunned. A call-up: everyone knows what that means.
난 망연자실했어. 소환장이라니,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소환'이라는 짧은 단어 하나가 안네를 얼어붙게 만들었어. 13살 소녀도 그 단어의 무시무시한 무게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게 너무 가슴 아프지 않니? 이제 도망갈 곳이 없다는 뜻이기도 해.
Visions of concentration camps and lonely cells raced through my head. How could we let Father go to such a fate?
수용소와 외딴 감방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어. 어떻게 아빠를 그런 운명에 처하게 놔둘 수 있겠어?
안네의 머릿속엔 벌써 끔찍한 상상들이 가득해. 아빠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어린 소녀의 마음을 집어삼켰어. '그런 운명'에 아빠를 절대 보낼 수는 없다는 안네의 단호한 결심이 느껴져.
“Of course he's not going,” declared Margot as we waited for Mother in the living room.
“물론 아빠는 안 가실 거야.” 거실에서 엄마를 기다리면서 언니가 단호하게 말했어.
마르고 언니의 카리스마가 폭발하는 순간이야! 평소엔 조용해도 이럴 땐 역시 장녀답게 딱 중심을 잡아주네. 엄마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이 일 년처럼 느껴졌을 거야.
“Mother's gone to Mr. van Daan to ask whether we can move to our hiding place tomorrow.
“엄마는 반 단 아저씨 댁에 가서 우리가 내일 당장 은신처로 옮길 수 있는지 물어보러 가셨어.”
내일 당장이라니! 원래 계획보다 무려 열흘이나 빨라졌어. 엄마는 지금 우리 가족의 생존이 걸린 아주 중요한 협상을 하러 가신 거야. 정말 피를 말리는 순간이지.
The van Daans are going with us. There will be seven of us altogether.” Silence. We couldn't speak.
“반 단 아저씨네 가족도 우리랑 같이 갈 거야. 그러면 우리 모두 일곱 명이 되는 거지.” 침묵이 흘렀어. 우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
일곱 명이 한 공간에 숨어 산다니, 상상만 해도 복잡할 것 같지만 한편으론 동지가 생겨서 든든했을 거야. 하지만 닥쳐올 현실의 무게가 너무 커서 거실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어.
The thought of Father off visiting someone in the Jewish Hospital and completely unaware of what was happening, the long wait for
아빠는 유대인 병원으로 누군가를 병문안하러 가셔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르고 계신다는 생각에, 그리고 엄마를 기다리는 그 긴 시간 동안...
아빠는 이 위급한 상황도 모르고 병원에 계시다니! 소식을 전할 길도 없고, 아빠가 무사히 돌아오실지 걱정은 태산이고... 안네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게 느껴지지 않니?
Mother, the heat, the suspense -- all this reduced us to silence.
무더위와 긴장감, 이 모든 것들이 우릴 침묵 속에 가둬버렸어.
날씨는 덥지, 아빠는 소식 없지, 은신 계획은 갑자기 코앞으로 닥쳤지... 이 삼중고가 안네 자매를 짓눌러버렸어. '침묵으로 전락했다'는 표현이 당시의 무거운 공기를 너무 잘 설명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