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t was partly because, instead of simply teaching, the sociology faculty got involved.
그건 부분적으로는, 단순히 가르치는 것 대신에 사회학과 교수진이 깊숙이 관여했기 때문이야.
모리 교수님네 사회학과 교수님들이 그냥 상아탑에 갇혀 책만 파는 분들이 아니었던 거지. 세상 돌아가는 일에 직접 발 벗고 나서니까, 행동하는 청년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든 거야. '말만 하지 말고 행동해라'를 몸소 실천하신 교수님들, 진짜 '힙'하지 않아?
It was fiercely antiwar, for example. When the professors learned that students who did not maintain a certain grade point average
예를 들어, 그곳은 격렬하게 전쟁을 반대하는 분위기였어. 교수들이 일정 수준의 평균 학점을 유지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당시 60년대 캠퍼스는 단순히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뜨거운 현장이었어. 특히 베트남 전쟁 반대 목소리가 엄청났는데, 학생들의 성적이 그들의 생사와 직결되는 상황이 오자 교수님들도 발 벗고 나선 거야.
could lose their deferments and be drafted, they decided not to give any grades.
징집 연기 자격을 잃고 군대에 끌려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자, 교수들은 아예 성적을 주지 않기로 결심했어.
성적이 나쁘면 입영 연기가 안 돼서 전쟁터로 끌려가야 했다니, 당시 학생들에게 학점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생명줄이었던 거야. 교수님들은 제자들을 지키기 위해 성적 산출 거부라는 초강수를 두신 거지. 진짜 '참스승' 모먼트 아니니?
When the administration said, “If you don’t give these students grades, they will all fail,”
대학 본부에서 "만약 당신들이 이 학생들에게 성적을 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모두 낙제하게 될 겁니다"라고 말했을 때,
교수님들의 반항에 학교 측도 가만히 있지 않았어. 행정실 꼰대(?)들이 '규정대로 안 하면 다 F 처리해버릴 거야!'라고 협박을 시작한 거야. 학생들을 사이에 둔 교수님들과 학교 본부의 팽팽한 밀당이 느껴지지?
Morrie had a solution: “Let’s give them all A’s.” And they did.
모리에게 해결책이 있었어. "그들에게 전부 A를 줍시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했지.
성적 안 주면 F 주겠다는 학교 측의 으름장에 모리 교수님이 던진 신의 한 수! '성적을 안 주는 게 문제라면, 그냥 다 최고점을 주면 되잖아?'라는 천재적이고 따뜻한 발상이야. 제자들을 사지로 보내지 않으려는 교수님의 센스와 사랑이 대폭발하는 순간이지.
Just as the sixties opened up the campus, it also opened up the staff in Morrie’s department,
60년대가 캠퍼스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던 것처럼, 모리가 속한 학과의 교수진도 변화시켰어.
학교 분위기가 자유로워지니까 교수님들도 덩달아 힙해지기 시작한 거야. 꼰대 같은 권위는 던져버리고 세상의 변화에 몸을 맡긴 거지. 교수님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다는 건 진짜 엄청난 변화 아니겠어?
from the jeans and sandals they now wore when working to their view of the classroom as a living, breathing place.
일할 때 입는 청바지와 샌들에서부터, 교실을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관점까지 말이야.
겉모습부터 마인드까지 싹 다 바뀐 거야. 정장 대신 샌들 신고 수업 들어오시는 교수님이라니, 완전 파격적이지 않아? 교실을 죽은 지식 전달 장소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태계로 본 거야.
They chose discussions over lectures, experience over theory.
그들은 일방적인 강의보다는 토론을, 이론보다는 경험을 선택했어.
'내가 말할 테니 너희는 적어라' 식의 지루한 수업은 이제 안녕! 직접 입을 열고 대화하며 몸으로 부딪히는 진짜 공부를 시작한 거지. 이게 바로 우리가 꿈꾸는 대학 수업 아니니?
They sent students to the Deep South for civil rights projects and to the inner city for fieldwork.
그들은 학생들을 민권 운동 프로젝트를 위해 남부 깊숙한 곳으로, 현장 실습을 위해 도시 빈민가로 보냈지.
책상 앞에만 앉아 있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가라는 교수님들의 특명! 인권 문제가 심각했던 남부나 치열한 삶의 현장인 도시 빈민가로 학생들을 직접 보낸 거야. 진짜 '리얼' 사회학을 가르치신 거지.
They went to Washington for protest marches, and Morrie often rode the busses with his students.
그들은 항의 행진을 하러 워싱턴으로 갔고, 모리는 자주 학생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갔어.
교수님이 그냥 '가서 열심히 해라' 말만 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 사이에서 같이 버스 타고 시위 현장까지 가는 찐동료였던 거야. 완전 '라떼는 말이야'가 아니라 '나도 같이 가!' 스타일이심. 요즘으로 치면 교수님이 과잠 입고 학생회 버스 같이 타신 격이지.
On one trip, he watched with gentle amusement as women in flowing skirts and love beads put flowers in soldiers’ guns,
한 번은 어떤 여행에서, 그는 긴 치마를 입고 사랑의 구슬 목걸이를 한 여인들이 군인들의 총구에 꽃을 꽂는 모습을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았지.
60년대 히피 문화가 딱 떠오르는 장면이지? 무시무시한 총구에 꽃을 꽂는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 낭만적이고 평화롭잖아. 모리 교수님도 그 광경이 참 귀엽고 대견하셨나 봐. 살벌한 대치 상황을 평화로 승화시키는 매직!
then sat on the lawn, holding hands, trying to levitate the Pentagon.
그러고는 잔디밭에 앉아 손을 맞잡고, 펜타곤(미 국방부 건물)을 공중 부양시키려고 애를 썼어.
이게 바로 60년대 감성! 건물을 기도로 띄워 버리겠다는 엉뚱함이 진짜 대단하지? 건물 안에 있는 전쟁의 기운을 다 날려버리고 싶었던 그들의 순수한 열정이 느껴져.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마음만큼은 이미 우주 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