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 one day she ran away, and Morrie was asked to help bring her back.
하지만 어느 날 그녀는 도망을 쳤고, 모리는 그녀를 다시 데려오는 것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어.
아이고, 이제 좀 친해지나 싶었는데 돌발 상황 발생! 그녀가 병원을 탈출해 버렸어. 병원 측에서는 그녀가 유일하게 마음을 연 사람이 모리니까, 구원투수로 모리 교수님을 긴급 호출한 거지. 긴박한 상황이지만 모리 교수님에 대한 병원의 신뢰가 느껴지기도 해.
They tracked her down in a nearby store, hiding in the back, and when Morrie went in, she burned an angry look at him.
그들은 근처 가게 뒤편에 숨어 있던 그녀를 찾아냈고, 모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그를 향해 분노 섞인 눈빛을 쏘아붙였어.
탈출한 그녀를 겨우 찾았는데, 하필이면 가장 믿었던 모리 교수님이 눈앞에 나타난 거야. 그녀 입장에서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자기를 잡으러 온 '추격자'로 보였을 테니 얼마나 배신감이 컸겠어?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게 당연하지.
“So you're one of them, too,” she snarled. “One of who?” “My jailers.”
“그래, 당신도 결국 그들 중 한 명이었군,” 그녀가 으르렁거리며 말했어. “그게 누군데?” “나를 가두는 간수들 말이야.”
친구가 아니라 자기를 감시하고 가두는 사람들과 한패라고 오해하고 있어. '나를 가두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쓴 걸 보면 그녀가 병원을 얼마나 감옥처럼 느끼고 있었는지 알 수 있지. 모리 교수님도 이 소리를 듣고 마음이 꽤나 쓰렸을 거야.
Morrie observed that most of the patients there had been rejected and ignored in their lives, made to feel that they didn't exist.
모리는 그곳 환자들 대부분이 살아오면서 거절당하고 무시당하며,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강요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어.
모리 교수님은 겉으로 보이는 환자들의 이상행동 너머를 본 거야. 그들이 미친 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서 마음이 부서진 거라는 걸 말이야.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만큼 큰 고통은 없지.
They also missed compassion—something the staff ran out of quickly.
그들은 또한 연민의 정이 그리웠는데—그건 직원들이 아주 금방 바닥내 버린 것이었지.
환자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약보다 따뜻한 눈길인데, 매일 격무에 시달리는 직원들에게 그런 여유를 기대하기는 힘들었나 봐. 마음의 에너지가 고갈된 직원들과 사랑에 굶주린 환자들 사이의 메마른 간극이 느껴져서 안타까워.
And many of these patients were well-off, from rich families, so their wealth did not buy them happiness or contentment.
그리고 이 환자들 중 많은 이들이 유복했어.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지. 그래서 그들의 부가 그들에게 행복이나 만족감을 사주지는 못했어.
돈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정신병원에 와 있는 찐부자들을 보니까 모리 교수님도 느낀 게 많으셨나 봐. 통장 잔고는 빵빵한데 마음은 텅 비어버린 분들을 보며 '현타'가 오신 거지. 인생의 진리가 돈에만 있는 건 아니라는 씁쓸한 교훈이야.
It was a lesson he never forgot. I used to tease Morrie that he was stuck in the sixties.
그건 그가 결코 잊지 않은 교훈이었지. 나는 모리가 60년대에 갇혀 있다고 놀리곤 했어.
병원에서의 경험이 모리 교수님 인생에 굵직한 문신처럼 남았나 봐. 제자인 미치가 교수님을 보니까 가치관이 딱 60년대 히피 시절에 멈춰있는 것 같아서 장난스럽게 딴지를 거는 정겨운 장면이야.
He would answer that the sixties weren't so bad, compared to the times we lived in now.
그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와 비교하면 60년대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대답하곤 했어.
놀림을 받아도 우리 쿨하신 모리 교수님은 허허 웃으며 받아치셔. 오히려 '야,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봐라. 차라리 그때가 낭만 있고 좋았지'라며 현대 사회의 각박함을 슬쩍 꼬집는 여유를 보여주시는 거야.
He came to Brandeis after his work in the mental health field, just before the sixties began.
그는 정신 건강 분야에서의 일을 마치고, 60년대가 시작되기 직전에 브랜다이스 대학교로 왔어.
모리 교수님이 이제 본격적으로 교수 커리어를 시작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야! 병원에서 환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던 임상 경험을 보따리에 싸 들고 대학으로 오신 거지. 폭풍 같은 60년대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의 묘한 설렘과 긴장감이 느껴져.
Within a few years, the campus became a hotbed for cultural revolution.
몇 년 지나지 않아, 캠퍼스는 문화 혁명의 온상이 되었어.
모리 교수님이 부임하고 얼마 안 돼서 캠퍼스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힌 거야. 조용하던 학교가 갑자기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핫플레이스가 된 거지. 요즘으로 치면 성수동 팝업스토어보다 더 힙한 에너지가 넘쳐흘렀을걸?
Drugs, sex, race, Vietnam protests. Abbie Hoffman attended Brandeis.
마약, 섹스, 인종 문제,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까지. 애비 호프만도 브랜다이스 대학교에 다녔지.
당시 60년대 미국 사회를 뒤흔들던 온갖 자극적이고 예민한 이슈들이 학교 안으로 다 들어온 거야. 게다가 당시 전설적인 사회 운동가였던 애비 호프만이 동문이라니, 학교 분위기가 얼마나 '빡셌을지' 짐작이 가지?
So did Jerry Rubin and Angela Davis. Morrie had many of the “radical” students in his classes.
제리 루빈과 안젤라 데이비스도 그랬지. 모리는 자신의 수업에 소위 '급진적인' 학생들을 많이 두었어.
유명한 활동가들이 다 이 학교 출신이야! 그런데 더 재밌는 건, 그런 기가 센(?) 학생들을 모리 교수님이 다 품으셨다는 거야. 까칠한 혁명가들도 모리 교수님 수업에서는 눈을 반짝이며 경청했다니, 교수님 아우라가 장난 아니었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