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ew weeks later, I got back a short message saying everything was okay,
몇 주 후에, 다 괜찮다는 짧은 메시지 답장을 받았어.
미치가 스페인에 있는 동생한테 그렇게 애타게 메시지를 남겼는데, 몇 주나 지나서야 답장이 온 거야. 기다리다 사리 나올 뻔했겠지? 근데 답장이 온 것까진 좋은데, 내용이 너무 짧아서 오히려 더 벽이 느껴지는 그런 상황이야.
but he was sorry, he really didn’t feel like talking about being sick.
하지만 그는 미안해했어, 아픈 것에 대해 정말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이야.
동생의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도 참 씁쓸하지. 자기가 아픈 모습을 보여주기도 싫고, 그 고통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고문일 수 있거든. 미치 입장에서는 도와주고 싶은데 동생이 입을 꾹 닫아버리니 답답해 죽을 노릇이지.
For my old professor, it was not the talk of being sick but the being sick itself that was sinking him.
나의 노교수님에게는, 아픈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아픈 것 그 자체가 그를 무너뜨리고 있었어.
동생은 병에 대해 말하는 걸 피하며 마음의 고통을 겪고 있지만, 모리 교수님은 달라. 교수님은 병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시거든. 문제는 말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육체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그 현실 자체가 교수님을 짓누르고 있다는 거야.
Since my last visit, a nurse had inserted a catheter into his penis,
지난번 방문 이후로, 간호사가 그의 성기에 도뇨관을 삽입했어.
교수님의 상태가 이제는 생리 현상조차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 도뇨관을 삽입했다는 건 삶의 아주 개인적이고 사소한 영역까지 타인의 손길이, 그것도 차가운 의료 기구의 형태로 들어왔다는 뜻이라 참 마음이 아픈 대목이야.
which drew the urine out through a tube and into a bag that sat at the foot of his chair.
그건 관을 통해 소변을 뽑아내서 의자 발치에 놓인 가방으로 보냈지.
이 문장은 방금 말한 도뇨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아주 건조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의자 밑에 놓인 소변 주머니... 예전의 지적이고 열정적이던 교수님의 모습과 대조되어 더 서글프게 느껴지지 않니?
His legs needed constant tending (he could still feel pain, even though he could not move them, another one of ALS’s cruel little ironies),
그의 다리는 끊임없는 보살핌이 필요했어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여전히 통증은 느낄 수 있었거든, 루게릭병이 부리는 잔인하고도 작은 역설 중 하나였지).
몸은 굳어버렸는데 고통만 생생하게 느껴지다니, 병이 참 짓궂다 못해 사악하기까지 하지? 움직이지도 못하는 다리가 아프기까지 하면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거야.
and unless his feet dangled just the right number of inches off the foam pads, it felt as if someone were poking him with a fork.
그리고 발이 폼 패드에서 딱 적당한 인치만큼 떠 있지 않으면, 마치 누군가 포크로 자기를 찌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대.
겨우 몇 인치 차이로 고통이 왔다 갔다 한다니, 모리 교수님의 신경이 얼마나 예민해져 있는지 알 수 있어. 아주 세밀한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야.
In the middle of conversations, Morrie would have to ask visitors to lift his foot and move it just an inch,
대화 도중에 모리 교수님은 방문객들에게 발을 들어서 딱 1인치만 옮겨달라고 부탁해야만 했어.
삶의 깊은 대화를 나누다가도 발 위치 하나 때문에 말을 멈춰야 하는 상황이야. 자존심 강한 분이었으면 정말 힘들었겠지만, 모리 교수님은 담담하게 도움을 요청하시네.
or to adjust his head so that it fit more easily into the palm of the colored pillows.
아니면 머리가 색색의 베개들 사이에 더 편안하게 놓이도록 조절해 달라고 말이야.
베개가 손바닥처럼 머리를 감싸주는 모양인가 봐. 스스로 머리조차 가누지 못하는 교수님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그를 받쳐주는 색색의 베개들이 따뜻한 위로처럼 느껴지기도 해.
Can you imagine being unable to move your own head?
네 머리조차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게 상상이 가니?
코끝이 간지러워도 손을 못 쓰는 건 상상해봤어도, 고개조차 내 마음대로 못 돌린다는 건 정말 차원이 다른 공포지. 모리 교수님의 자유가 얼마나 처절하게 구속당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질문이야.
With each visit, Morrie seemed to be melting into his chair, his spine taking on its shape.
매번 방문할 때마다, 모리 교수님은 의자 속으로 녹아내리는 것 같았어, 그의 척추가 의자 모양을 따라 굳어지면서 말이야.
근육이 사라지고 뼈만 남은 몸이 의자의 곡선에 맞춰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야. '녹아내린다'는 표현이 비유적이지만 너무 사실적이라 가슴 한구석이 찡해지네.
Still, every morning he insisted on being lifted from his bed and wheeled to his study,
그래도 매일 아침 그는 침대에서 들어 올려져 휠체어를 타고 서재로 가는 걸 고집하셨어,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지만, 교수님은 여전히 지적인 열정을 불태울 서재로 가길 원하셔. 육체는 죽어가고 있지만 정신은 끝까지 자기 삶의 루틴을 지키고 싶어 하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