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felt a little ashamed, because our culture tells us we should be ashamed if we can’t wipe our own behind.”
조금은 수치스럽기도 했어, 왜냐하면 우리 문화는 자기 뒤처리를 스스로 못 하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가르치니까.
자존심 강한 모리 할아버지가 스스로 화장실 뒤처리를 못 하게 된 상황에 '현타'가 온 장면이야. 사회적 시선 때문에 처음엔 좀 괴로우셨던 모양이야.
“But then I figured, ‘Forget what the culture says.’ I have ignored the culture much of my life.”
하지만 그러다 생각했지, '문화가 뭐라든 잊어버려.' 난 평생의 많은 시간을 문화를 무시하며 살아왔거든.
모리 교수님의 '아웃사이더' 본능이 깨어나는 순간이야. 남들이 뭐라건 내 식대로 살겠다는 쿨함! 역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다르지?
“I am not going to be ashamed. What’s the big deal?”
난 부끄러워하지 않을 거야. 그게 뭐 대수라고?
이제 완전 해탈하셨어! 남이 엉덩이 좀 닦아주면 어때? 내가 편하면 장땡이지 하는 무적의 논리야. 이 당당함, 배우고 싶지 않니?
“And you know what? The strangest thing.” What’s that?
그리고 그거 알아? 정말 이상한 일이지. 그게 뭔데요?
모리 할아버지가 갑자기 떡밥을 던지셨어. 뭔가 신박한 반전을 얘기할 모양이야. 제자 미치도 '뭔데요?' 하면서 낚여버렸지.
“I began to enjoy my dependency. Now I enjoy when they turn me over on my side and rub cream on my behind so I don’t get sores.”
“난 내 의존성을 즐기기 시작했어. 이제 사람들이 내 몸을 옆으로 돌려 눕히고 엉덩이에 크림을 발라줄 때가 즐거워, 욕창이 생기지 않게 말이야.”
모리 교수님이 이제 해탈의 경지에 오르셨어. 남의 손길을 거부하는 대신, 오히려 '아기 모드'로 변신해서 그 돌봄을 즐기기로 하신 거지. 엉덩이 크림 바르는 것까지 즐기신다니, 이 긍정 에너지는 정말 아무도 못 말린다니까?
“Or when they wipe my brow, or they massage my legs. I revel in it. I close my eyes and soak it up.”
“아니면 내 이마를 닦아주거나 다리를 마사지해 줄 때도 말이야. 난 그걸 아주 즐겨. 눈을 감고 그 기분을 온몸으로 만끽하지.”
이젠 거의 고급 스파 서비스를 받는 회장님 포스야. 남의 손길이 닿는 모든 순간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계셔. '에라 모르겠다, 시원하고 좋네!' 하시는 교수님의 모습이 그려지지?
“And it seems very familiar to me. It’s like going back to being a child again.”
“그런데 그게 나한테는 아주 익숙하게 느껴져. 마치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 같아.”
할아버지가 된 모리 교수님이 왜 이 상황을 즐기시는지 드디어 이유가 나왔어. 바로 아기 때의 기억이 떠오른 거지. 누군가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돌봄을 듬뿍 받던 그 시절의 따스함이 되살아나신 거야.
“Someone to bathe you. Someone to lift you. Someone to wipe you.”
“누군가 널 씻겨주고. 누군가 널 들어 올려주고. 누군가 널 닦아주는 것 말이야.”
아기 때 우리가 받았던 그 무조건적인 돌봄들을 하나씩 나열하고 있어. 씻겨주고 안아주는 그 손길들이 사실은 인간이 가장 원초적으로 그리워하는 따뜻함이라는 걸 교수님은 몸소 체험하고 계신 거야.
“We all know how to be a child. It’s inside all of us. For me, it’s just remembering how to enjoy it.”
“우리 모두는 어린아이가 되는 법을 알고 있어. 그건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거든. 나한테는, 그저 그걸 어떻게 즐기는지 기억해 내는 것뿐이야.”
모리 할아버지가 깨달음을 얻으셨어. 우리 몸속엔 다들 '응애' 시절의 본능이 잠들어 있다는 거지. 할아버지는 그저 그 본능을 다시 끄집어내서 즐기고 계신 거야. 우리 안에 숨어있는 '어른이' 본능을 깨우는 중이랄까?
“The truth is, when our mothers held us, rocked us, stroked our heads—none of us ever got enough of that.”
“사실은, 우리 어머니들이 우리를 안아주고, 흔들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을 때—우리 중 그 누구도 그걸 충분히 받아본 적이 없다는 거야.”
갑자기 분위기 숙연해지네. 우리가 아무리 사랑받고 자랐어도, 그 포근한 손길에 대한 갈증은 다들 조금씩 남아있나 봐. 할아버지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애정 결핍'의 근본을 콕 찌르셨어.
“We all yearn in some way to return to those days when we were completely taken care of—unconditional love, unconditional attention.”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그 시절로 돌아가기를 갈망해. 우리가 완전히 보살핌을 받았던 시절—무조건적인 사랑과 무조건적인 관심 말이야.”
'나 돌아갈래!'를 외치는 우리들의 속마음이야. 아무 걱정 없이 먹여주고 재워주던 그 무조건적인 사랑의 끝판왕 시절, 다들 그립지? 모리 할아버지는 지금의 아픈 상황을 오히려 그 그리웠던 시절로 돌아가는 통로로 보고 계신 것 같아.
“Most of us didn’t get enough. I know I didn’t.”
“우리 대부분은 충분히 받지 못했어. 나도 그랬다는 걸 알아.”
모리 할아버지의 솔직한 고백 타임. 평생 사랑을 베풀며 사셨을 것 같은 교수님도 정작 본인은 사랑에 목말라하셨대. 이 짧은 문장 안에 할아버지의 외로웠던 과거와 지금 느끼는 충족감이 동시에 느껴져서 뭉클하다,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