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night, we had pizza with green peppers and broccoli. We were seated around our little circular table in the kitchen when my phone started singing,
일요일 밤, 우리는 피망과 브로콜리를 얹은 피자를 먹고 있었다. 주방에 있는 작은 원형 식탁에 둘러앉아 있을 때 내 전화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피망과 브로콜리 피자라니 메뉴 선정부터가 이미 건강함 그 자체군요. 그 와중에 울리는 벨 소리가 고요한 식탁에 파문을 일으킵니다.
but I wasn’t allowed to check it because we have a strict no-phones-during-dinner rule.
하지만 식사 중에는 절대 전화를 확인하지 않는다는 엄격한 규칙 때문에 전화를 확인할 수 없었다.
밥 먹을 때 폰 안 보기는 어느 나라나 공통된 금기 사항인가 봅니다. 궁금해서 미칠 지경일 텐데 규칙을 지키는 주인공이 대견스럽네요.
So I ate a little while Mom and Dad talked about this earthquake that had just happened in Papua New Guinea.
그래서 엄마와 아빠가 파푸아뉴기니에서 방금 일어난 지진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피자를 조금 먹었다.
부모님은 과거의 추억 속으로 떠나버리셨습니다. 딸 앞에서의 밥상머리 교육보다 파푸아뉴기니 지진이 더 급한 주제가 되었네요?
They met in the Peace Corps in Papua New Guinea, and so whenever anything happened there, even something terrible,
두 분은 파푸아뉴기니 평화 봉사단에서 만나셨다. 그래서 그곳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설령 그것이 끔직한 일일지라도...
평화 봉사단이라는 공통분모가 부모님을 다시 청춘으로 돌려보냅니다. 사건의 심각성보다 그곳과의 연결고리가 더 중요한가 보네요.
it was like all of a sudden they were not large sedentary creatures,
갑자기 두 분은 더 이상 덩치 크고 정적인 생명체가 아니었다.
평소의 정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생기가 넘칩니다. 추억 여행은 최고의 회춘약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네요.
but the young and idealistic and self-sufficient and rugged people they had once been,
그들은 한때 그랬던 것처럼 젊고 이상적이며, 자급자족할 줄 아는 강인한 사람들로 변했다.
눈에서 광채가 나는 것만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두 분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영웅처럼 느껴지시겠네요.
and their rapture was such that they didn’t even glance over at me as I ate faster than I’d ever eaten,
두 분은 그 황홀경에 빠져 내가 평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음식을 먹어 치우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부모님의 몰입도가 너무 높아서 딸이 피자를 흡입하는 것도 모릅니다. 덕분에 주인공은 눈치 안 보고 빛의 속도로 접시를 비울 수 있겠네요.
transmitting items from my plate into my mouth with a speed and ferocity that left me quite out of breath,
숨이 찰 정도의 속도와 기세로 접시에 담긴 것들을 입안으로 옮겨 담았다.
숨도 안 쉬고 먹는 걸 보니 꽤나 급했나 봅니다. 부모님이 수다에 빠진 틈을 타서 입속으로 피자를 퀵 배송 중이네요. (거의 숨쉬기 운동 국가대표급으로 몰아치고 있어 ㅠ)
which of course made me worry that my lungs were again swimming in a rising pool of fluid.
그러다 보니 당연히 폐에 다시 물이 차올라 헤엄이라도 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과식은 때로 병의 증상으로 오해받기 십상이죠. 걱정하는 주인공의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도 왠지 짠해지네요.
I banished the thought as best I could. I had a PET scan scheduled in a couple weeks.
나는 최대한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 몇 주 뒤에 PET 스캔이 예약되어 있었다.
나쁜 생각은 빨리 지우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PET 스캔이라는 거대한 벽이 기다리고 있으니 지금은 그냥 피자 맛에만 집중하시죠.
If something was wrong, I’d find out soon enough. Nothing to be gained by worrying between now and then.
뭔가 잘못되었다면 곧 알게 될 일이었다. 지금과 그때 사이에 걱정해 봤자 얻을 건 없었다.
미리 걱정한다고 결과가 바뀌지는 않는 법입니다. 어차피 닥칠 일이라면 미리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합리적인 판단이네요.
And yet still I worried. I liked being a person. I wanted to keep at it. Worry is yet another side effect of dying.
그런데도 여전히 걱정이 되었다. 나는 사람으로 사는 게 좋았다. 이 일을 계속하고 싶었다. 걱정은 죽어감에 뒤따르는 또 다른 부작용이다.
걱정도 결국 살아있으려는 의지의 다른 이름일까요? 죽어가는 과정의 부작용이라는 표현이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