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had an awesome trip.” “I am trying,” he said. “I am trying, I swear.”
우리는 멋진 여행을 했으니까요.”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정말 노력하고 있어요, 맹세코.”
여행은 좋았으니 죄책감 갖지 말라는 뜻인가 봐. 반 호텐은 뭘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걸까? 술을 끊으려는 건지 아니면 사람이 되려는 건지 모르겠네.
It was around then that I realized Peter Van Houten had a dead person in his family.
그제야 나는 피터 반 호텐의 가족 중에도 죽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역시 상처 입은 치유자였던 건가? 그 지독한 냉소 뒤에는 가족을 잃은 슬픔이 숨어 있었나 봐. 이제야 그의 이상한 행동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해.
I considered the honesty with which he had written about cancer kids;
나는 그가 암에 걸린 아이들에 대해 얼마나 솔직하게 썼는지를 생각해보았다.
그가 쓴 소설이 왜 그렇게 생생했는지 답이 나왔지?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디테일이었을 거야. 슬픔이 재능이 되는 건 좀 잔인한 일인 것 같애.
the fact that he couldn’t speak to me in Amsterdam except to ask if I’d dressed like her on purpose;
암스테르담에서 내가 일부러 그 애처럼 옷을 입었느냐고 묻는 것 외엔 제대로 말조차 섞지 못했던 그 사실도.
헤이즐을 보고 죽은 딸을 떠올렸던 거겠지? 그래서 그렇게 무례하고 괴팍하게 굴었나 봐. 상처받기 싫어서 먼저 공격하는 전형적인 모습이야.
his shittiness around me and Augustus; his aching question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pain’s extremity and its value.
나와 어거스터스에게 보여준 그 엉망진창인 태도와, 고통의 극단과 그 가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그 아픈 질문까지도.
그의 모든 무례함이 사실은 고통의 몸부림이었다니 ㅋ. 고통에 무슨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은 본인 스스로에게 던지는 절규였을 거야. 이제 이 아저씨가 좀 짠해 보이는데.
He sat back there drinking, an old man who’d been drunk for years.
그는 뒷좌석에 앉아 술을 마셨다. 수년 동안 술에 취해 살아온 노인이었다.
맨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는 세월이었나 봐. 뒷좌석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참 쓸쓸해 보이지? 술기운에 숨어버린 한 영혼의 모습이야.
I thought of a statistic I wish I didn’t know: Half of marriages end in the year after a child’s death.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통계 수치가 떠올랐다. 아이가 죽은 지 1년 만에 부부의 절반이 이혼한다는 사실이다.
자식을 잃은 슬픔은 부부 관계조차 갈라놓을 만큼 파괴적이지. 반 호텐도 아마 그 통계의 희생자 중 한 명 아닐까? 현실은 참 소설보다 더 가혹한 법이야.
I looked back at Van Houten. I was driving down College and I pulled over behind a line of parked cars and asked, “You had a kid who died?”
나는 반 호텐을 뒤돌아보았다. 컬리지 가를 따라 차를 몰다가 주차된 차들 뒤에 멈춰 서서 물었다. “아이를 잃으셨나요?”
드디어 직접적인 질문을 던졌어. 헤이즐의 직구에 반 호텐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차 안의 공기가 갑자기 차갑게 가라앉는 느낌이야.
“My daughter,” he said. “She was eight. Suffered beautifully. Will never be beatified.”
“내 딸이었죠.” 그가 말했다. “여덟 살이었어요. 아름답게 고통받다가 떠났지. 결코 복자로 추대되지는 못하겠지만요.”
여덟 살 딸이라니 너무 어린 나이지? '아름답게 고통받았다'는 표현에서 그의 비정상적인 슬픔이 느껴져. 성인으로 추대될 리 없다는 말은 신에 대한 원망일지도 몰라.
“She had leukemia?” I asked. He nodded. “Like Anna,” I said. “Very much like her, yes.”
“백혈병이었나요?” 내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나처럼요.” 내가 말하자 그가 대답했다. “그래요, 안나와 아주 비슷했죠.”
소설 속 안나는 결국 그의 딸이었어. 자기 아이의 투병기를 소설로 쓴 셈이지. 작가에게 소설은 때로 가장 잔인한 일기가 되기도 하나 봐.
“You were married?” “No. Well, not at the time of her death.
“결혼은 하셨었나요?” “아뇨. 뭐, 아이가 죽었을 때는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죽기 전 혹은 후에 가정이 깨졌나 봐. 슬픔을 같이 나누지 못하고 각자 찢어진 거네. 혼자 남은 그의 고통이 더 깊어 보이는 이유지?
I was insufferable long before we lost her. Grief does not change you, Hazel. It reveals you.”
그 애를 잃기 훨씬 전부터 난 형편없는 인간이었거든요. 슬픔은 사람을 바꾸지 않아요, 헤이즐. 그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낼 뿐이죠.”
와, 이 문장 뼈 때리네. 슬픔이 본성을 드러낸다는 말이 참 철학적이지? 본인이 형편없는 인간이었다고 쿨하게 인정하는 게 더 슬퍼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