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carefully calculated that the pain of me living as the bloody disaster that is myself
“나 자신이라는 이 끔찍한 재앙으로 계속 살아가는 고통이,”
is greater than the pain anyone else will feel if I were to die.
“내가 죽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느낄 고통보다 더 크다고 신중하게 계산을 끝냈어요.”
In fact, I’m sure it would be a relief. I’m not useful to anyone. I was bad at work.
“사실 다들 시원해할 거예요. 전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거든요. 일도 엉망으로 했고요.”
I have disappointed everyone. I am a waste of a carbon footprint, to be honest. I hurt people.
“모두를 실망시켰죠. 솔직히 전 탄소 발자국이나 낭비하는 존재예요. 사람들에게 상처나 주고요.”
carbon footprint(탄소 발자국)는 원래 온실가스 배출량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자신의 존재가 지구에 아무런 가치 없이 자원만 낭비하고 있다는 노라의 비참하고 자조적인 심경을 담은 표현입니다.
I have no one left. Not even poor old Volts, who died because I couldn’t look after a cat properly.
“이젠 아무도 곁에 없어요. 고양이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해 죽게 만든 그 가여운 볼츠조차도요.”
I want to die. My life is a disaster. And I want it to end. I am not cut out for living.
“죽고 싶어요. 제 인생은 재앙이에요. 다 끝내버리고 싶단 말이에요. 전 살아가는 데 적합한 사람이 아니에요.”
And there is no point going through all this. Because I am clearly destined to be unhappy in other lives too.
“이 모든 과정을 겪는 게 아무 의미 없어요. 전 다른 삶에서도 분명 불행해질 운명이니까요.”
That is just me. I add nothing. I am wallowing in self-pity. I want to die.’
“그게 바로 저예요. 전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존재예요. 그저 자기 연민에 빠져 있을 뿐이죠. 죽고 싶어요.”
Mrs Elm studied Nora hard, as if reading a passage in a book she had read before but had just found it contained a new meaning.
엘름 부인은 마치 전에 읽었던 책의 구절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 사람처럼 노라를 유심히 살폈다.
‘Want,’ she told her, in a measured tone, ‘is an interesting word. It means lack.
“‘원함’이라는 건,” 부인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흥미로운 단어지. 그건 ‘결핍’을 의미한단다.”
Want라는 단어가 현대어에서는 원하다라는 뜻으로 주로 쓰이지만, 고전적이고 철학적인 맥락에서는 결핍이나 부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엘름 부인은 이 중의적인 의미를 빌려 노라의 마음을 진단하고 계시는군요.
Sometimes if we fill that lack with something else the original want disappears entirely.
“때로는 그 결핍을 다른 무언가로 채우면 원래의 원함은 완전히 사라지기도 하지.”
Maybe you have a lack problem rather than a want problem. Maybe there is a life that you really want to live.’
“어쩌면 넌 ‘원함’의 문제가 아니라 ‘결핍’의 문제를 겪고 있는지도 몰라. 네가 정말로 살고 싶은 삶이 있을지도 모르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