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he had a large reclining chair set up with pillows, blankets,
그 서재에는 베개와 담요를 갖춘 커다란 등받이 조절 의자가 놓여 있었지.
이제 서재는 단순한 공부방이 아니라 교수님의 병실이자 안식처가 됐어. 푹신한 리클라이닝 의자에 베개랑 담요까지... 교수님이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세팅된 '교수님 전용석'이야.
and specially cut pieces of foam rubber that held his feet and gave support to his withered legs.
그리고 발을 고정해주고 야윈 다리를 지탱해주는, 특별히 자른 발포 고무 조각들도 있었어.
그냥 평범한 고무 조각이 아니라, 교수님의 불편한 다리 모양에 맞춰 '특별히' 제작된 도구들이야. 병마와 싸우며 점점 말라가는 교수님의 다리를 지탱해주는 이 소품들이 왠지 서글프게 느껴져.
He kept a bell near his side, and when his head needed adjusting or he had to “go on the commode,” he would shake the bell
교수님은 옆에 종을 하나 두셨는데, 머리 위치를 바꿔야 하거나 ‘이동식 변기’를 써야 할 때 그 종을 흔들곤 하셨어.
혼자서는 몸을 뒤척이는 것도, 화장실에 가는 것도 불가능해진 교수님의 상황을 보여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종을 흔들어야 하는 그 마음이 어떨까? 작은 종소리가 교수님의 간절한 목소리처럼 들리는 것 같아.
and Connie, Tony, Bertha, or Amy—his small army of home care workers—would come in.
그러면 코니, 토니, 버사, 혹은 에이미 같은—교수님의 소수 정예 홈케어 군단—사람들이 들어오곤 했어.
종소리가 울리면 대기하고 있던 도우미들이 출동해. 이 사람들을 '작은 군대(small army)'라고 표현한 게 재밌지? 그만큼 체계적이고 헌신적으로 교수님을 지키고 있다는 뜻일 거야. 이름이 하나하나 열거되는 데서 교수님과 이들의 친밀함도 느껴져.
It wasn’t always easy for him to lift the bell, and he got frustrated when he couldn’t make it work.
교수님이 종을 들어 올리는 게 항상 쉬운 건 아니었어. 그리고 마음대로 잘 안될 때는 짜증이 나기도 하셨지.
교수님한테 그 작은 종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비상벨 같은 건데, 이제 그 가벼운 걸 드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이야. 마음은 굴뚝같은데 몸이 안 따라주니 얼마나 답답하시겠어? 옆에서 지켜보는 미치 마음도 찢어진다 정말.
I asked Morrie if he felt sorry for himself. “Sometimes, in the mornings,” he said.
나는 모리 교수님께 자기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지는지 물었어. "가끔, 아침에 그렇다네." 교수님이 말씀하셨지.
미치가 아주 직설적인 질문을 던졌네. 보통 환자들한테 이런 거 묻기 힘들잖아? 근데 모리 교수님은 쿨하게 인정하셔.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자기 연민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장면이야.
“That’s when I mourn. I feel around my body, I move my fingers and my hands—
"그때가 내가 애도하는 시간이야. 내 몸 여기저기를 만져보고, 손가락과 손을 움직여 보지—"
교수님은 아침마다 일종의 '작별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아. 아직 움직이는 부분에 감사하면서도,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은 몸을 보며 충분히 슬퍼해 주는 거지. 슬픔을 억누르지 않고 마주하는 교수님만의 방식이야.
whatever I can still move—and I mourn what I’ve lost.”
"내가 아직 움직일 수 있는 건 뭐든지 다— 그리고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애도한다네."
아직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확인과 이미 떠나보낸 것들에 대한 슬픔이 공존하는 가슴 뭉클한 대목이야.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상실을 이렇게 담담하고도 깊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게 참 대단하신 것 같아.
“I mourn the slow, insidious way in which I’m dying. But then I stop mourning.”
“천천히, 야금야금 내 목숨을 앗아가는 이 죽음의 방식을 슬퍼한다네. 하지만 그러고 나면 슬퍼하기를 멈추지.”
교수님은 매일 아침 자신에게 '슬퍼할 시간'을 딱 정해두고 허락하셔. 병이 내 몸을 조금씩 갉아먹는 걸 인정하면서도, 거기에 하루 종일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교수님만의 단호한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야.
Just like that? “I give myself a good cry if I need it. But then I concentrate on all the good things still in my life.”
그렇게 간단히요? “난 필요할 때 실껏 울어버린다네. 하지만 그러고 나선 여전히 내 삶에 남아있는 모든 좋은 것들에 집중하지.”
미치는 교수님이 너무 쉽게 슬픔을 털어버리는 것 같아 놀란 눈치야. 하지만 교수님은 슬픔을 참는 게 아니라, 아주 '딥(deep)'하게 한번 울어주고 나서 관심을 딴데로 돌리는 고단수의 멘탈 관리법을 전수해주고 계셔.
“On the people who are coming to see me. On the stories I’m going to hear. On you—if it’s Tuesday. Because we’re Tuesday people.”
“나를 보러 오는 사람들. 내가 듣게 될 이야기들. 그리고 자네— 화요일이라면 말이지. 우린 화요일의 사람들이니까.”
교수님이 집중하는 '좋은 것들'이 구체적으로 뭔지 나열하고 있어. 결국 '사람'과 '관계'지. 특히 미치와 만나는 화요일을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마음이 느껴져서 코끝이 찡해져.
I grinned. Tuesday people. “Mitch, I don’t allow myself any more self-pity than that.”
난 싱긋 웃었어. 화요일의 사람들. “미치, 난 그 이상의 자기연민은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는다네.”
교수님의 센스 있는 '화요일의 사람들'이라는 말에 미치도 긴장이 풀려 웃음을 터뜨려. 교수님은 아침마다 잠깐씩만 슬퍼하고 남은 시간은 삶의 기쁨에 쏟는다는 자신의 규칙을 다시 한번 강조하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