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e property is good. More commercialism is good. More is good. More is good.
재산이 더 많은 건 좋은 거다. 상업주의가 더 심해지는 건 좋은 거다. 더 많은 게 좋은 거다. 더 많은 게 장땡인 거지.
교수님이 'More'라는 단어를 계속 반복하시는데, 이건 거의 랩 가사 수준이지? 사회가 우리 귀에 대고 '더 사! 더 가져!'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환청을 들려주시는 것 같아. 들으면 들을수록 숨 막히는 물질주의의 굴레랄까?
We repeat it—and have it repeated to us—over and over until nobody bothers to even think otherwise.
우리는 그 말을 반복하고, 또 그 말이 우리에게 반복해서 들리게 만들지. 아무도 다르게 생각할 엄두조차 내지 않을 때까지 계속해서 말이야.
이건 거의 '인셉션' 급 세뇌 과정이야. 내가 남들한테 '돈이 최고야'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TV나 광고를 통해 그 소리를 계속 듣기도 한다는 거지. 결국 아무도 '어? 이게 아닌가?'라는 생각조차 못 하게 만드는 무서운 시스템을 설명하고 계셔.
The average person is so fogged up by all this, he has no perspective on what’s really important anymore.
보통 사람들은 이 모든 것 때문에 눈앞이 캄캄해져서, 이제는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에 대한 관점조차 없어져 버렸어.
안개가 자욱하게 끼면 바로 앞도 안 보이잖아? 물질주의라는 안개 때문에 사람들이 진짜 소중한 가치(사랑, 관계, 인생의 의미 등)를 못 보고 길을 잃었다는 비유야. 우리가 내비게이션 없이 낯선 길에 떨어진 것처럼 멍하니 살고 있다는 거지.
“Wherever I went in my life, I met people wanting to gobble up something new.
내 인생 어디를 가든, 항상 새로운 걸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려는 사람들을 만났단다.
모리 교수님이 평생 돌아다니며 본 사람들의 공통점이 바로 '쇼핑 중독' 같은 끝없는 소유욕이었다는 거야. 마치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새로운 물건만 찾아 헤매는 도시 하이에나들의 모습이지. 돈 냄새, 물건 냄새만 나면 눈이 번쩍 뜨이는 우리들의 씁쓸한 초상화랄까?
Gobble up a new car. Gobble up a new piece of property. Gobble up the latest toy.
새 차를 집어삼키고. 새로운 부동산을 집어삼키고. 최신 유행하는 장난감을 집어삼키는 거지.
단순히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차, 집, 명품 같은 걸 사 모으는 걸 '먹어치운다'고 표현하신 거야. 카드 긁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지 않니? 지름신이 강림해서 영혼까지 탈탈 털어 쇼핑하는 풍경이야. 배는 안 부른데 통장만 가벼워지는 마법!
And then they wanted to tell you about it. ‘Guess what I got? Guess what I got?’
그러고 나선 너한테 그걸 자랑하고 싶어 안달복달하지. '나 뭐 샀게? 나 뭐 샀는지 맞춰봐!'
꼭 비싼 거 사면 동네방네 소문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잖아? 인스타그램에 인증샷 올리고 '내돈내산' 태그 거는 심리랑 똑같다고 보면 돼. "나 이거 샀다!"라고 외치는 그 간절한 눈빛, 상상 가니? 칭찬해달라고 꼬리 흔드는 강아지 같기도 하고 말이야.
“You know how I always interpreted that? These were people so hungry for love that they were accepting substitutes.
“내가 그걸 항상 어떻게 해석했는지 아니? 이 사람들은 사랑에 너무 굶주려서 그 대신 대용품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거야.”
교수님의 통찰력이 빛나는 순간이야. 사람들이 왜 그렇게 물건에 집착하나 했더니, 사실은 마음속에 사랑이 부족해서 그 빈 공간을 물건으로 채우려 했다는 거지. 명품백이 사실은 '나 좀 사랑해줘'라는 눈물겨운 몸부림이었다는 슬픈 반전이야. 마음의 공허함을 쇼핑으로 때우는 우리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지?
They were embracing material things and expecting a sort of hug back. But it never works.
그들은 물질적인 것들을 껴안으면서 그것들이 다시 안아주길 기대하고 있었어. 하지만 그건 절대 통하지 않아.
새로 산 명품백이나 최신형 휴대폰을 품에 꼭 안고 있으면 잠시나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지? 하지만 그 가방이 너의 슬픔을 위로해주거나 따뜻하게 답례 포옹을 해주지는 않잖아. 사랑받고 싶은 공허함을 쇼핑백으로 채우려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상황인 거야.
You can’t substitute material things for love or for gentleness or for tenderness or for a sense of comradeship.
사랑이나 다정함, 부드러움, 혹은 동료애 같은 것들을 물질적인 것으로 대신할 수는 없단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어도 잠은 못 사고, 명품 시계는 살 수 있어도 시간은 못 산다는 말 들어봤지? 인간관계의 따뜻한 온도는 편의점 도시락처럼 돈 주고 데워올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교수님의 조언이야. 마음의 빈자리를 물건으로 채우려는 건 유통기한 지난 우유로 배를 채우려는 것과 같아.
“Money is not a substitute for tenderness, and power is not a substitute for tenderness.
"돈은 다정함의 대용품이 아니고, 권력 또한 다정함을 대신할 수 없어."
갑질하는 사장님이 돈은 많아도 주변에 진심으로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없는 경우 많지? 돈이랑 힘이 있으면 다들 겉으로는 굽신거리겠지만, 그건 네가 무서워서 혹은 돈이 탐나서 그러는 거지 진짜 너를 아끼는 '다정함'은 아니라는 거야. 가짜 웃음에 속지 말라는 교수님의 촌철살인이지.
I can tell you, as I’m sitting here dying, when you most need it,
내가 지금 여기 죽어가며 앉아있는 사람으로서 말해줄 수 있는데, 네가 그것이 가장 절실할 때,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계신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이라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묵직해. 죽음을 앞둔 순간에 "아, 그때 그 주식 더 살걸" 혹은 "비싼 차 하나 더 살걸"이라고 후회하는 사람은 없거든. 진짜 삶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게 뭔지, 경험담으로 툭 던져주시는 거야.
neither money nor power will give you the feeling you’re looking for, no matter how much of them you have.”
돈도 권력도 네가 찾고 있는 그 기분을 느끼게 해주지 못할 거야, 네가 그걸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든지 간에 말이지."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사랑받는다는 확신'이나 '마음의 평온'인데, 돈이랑 권력은 그걸 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를 꼬시는 가짜 약 같은 거래.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느낌은 채워지지 않는다는 마지막 경고야. 결국 우리가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건 통장 잔고가 아니라 사랑받았던 기억뿐이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