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 Mr. Tushman looked up at the audience. “Kinder than is necessary,” he repeated.
여기서 터쉬먼 선생님은 청중을 올려다보았다. “필요한 것보다 더 친절하게.” 그는 이 말을 되풀이했다.
중요한 대사를 날리고 청중들의 눈을 하나하나 맞추는 쌤의 노련한 눈빛! 그리고 그 핵심 문장을 다시 한번 씹어 넘기듯 되풀이하시네. 분위기가 아주 경건해졌어. 이제 딴짓하던 애들도 다 쳐다보고 있을걸?
“What a marvelous line, isn’t it? Kinder than is necessary. Because it’s not enough to be kind. One should be kinder than needed.
“정말 멋진 말 아닌가요? 필요한 것보다 더 친절하게. 그냥 친절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필요한 것 이상으로 친절해야 합니다.”
쌤도 이 문장에 완전히 꽂히셨나 봐. 감탄사까지 섞어가며 열변을 토하고 계셔. '그냥 친절'은 90점이고, 100점을 채우려면 그 선을 넘어서는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는 거지. 쌤의 친절 철학 강의가 아주 핫해!
Why I love that line, that concept, is that it reminds me that we carry with us, as human beings,
내가 그 말과 그 개념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인간이 지니고 다니는 무언가를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마음속에 늘 품고 다니는 소중한 아이템이 뭔지 썰을 풀기 시작하셨어. 밥 먹고 잠자는 동물적인 것 말고, 우리를 진짜 '사람'답게 만드는 그 신비한 아이템에 대해 쌤이 감성 돋게 고백하고 계셔.
not just the capacity to be kind, but the very choice of kindness.
그것은 단지 친절해질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친절을 선택하는 바로 그 의지이다.
그냥 '난 친절할 능력이 있어'라고 생각만 하는 거랑, 실제로 그 친절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딱 '선택'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지. 쌤은 그 '의지'와 '선택'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청중들 가슴에 쐐기를 박고 계셔.
And what does that mean? How is that measured? You can’t use a yardstick.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어떻게 측정해야 할까? 야드자(척도)를 사용할 수는 없다.
친절이라는 게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자로 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터쉬먼 쌤은 지금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어. 우리보고 생각 좀 해보라는 거지. 친절에도 가성비가 있는 걸까?
It’s like I was saying just before: it’s not like measuring how much you’ve grown in a year.
방금 내가 말했던 것과 같다. 1년 동안 얼마나 컸는지 측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아까 쌤이 키 재는 거랑은 다르다고 했었지? 그 얘기를 다시 환기하면서 친절의 측정법이 신체 검사랑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걸 강조하고 있어. 쑥쑥 자라는 키처럼 딱 보이면 얼마나 좋겠니?
It’s not exactly quantifiable, is it? How do we know we’ve been kind? What is being kind, anyway?”
그것은 정확히 수치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친절하게 행동해 왔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애초에 친절하다는 게 뭘까?
'수치화'라는 어려운 단어까지 써가면서 쌤이 뇌섹남 포스를 풍기고 있어. 친절은 가성비 따지는 숫자의 영역이 아니라 마음의 영역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거겠지?
He put on his reading glasses again and started flipping through another small book.
그는 다시 돋보기를 쓰고 또 다른 작은 책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터쉬먼 쌤, 책 한 권으로 안 끝나네? 또 다른 책을 꺼내서 뒤적거리는 걸 보니 이번엔 더 센 한 방을 준비한 모양이야. 안경을 다시 고쳐 쓰는 모습이 아주 진지해 보여.
“There’s another passage in a different book I’d like to share with you,” he said. “If you’ll bear with me while I find it... Ah, here we go.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또 다른 구절이 다른 책에 하나 더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찾는 동안 잠시만 기다려 주신다면... 아, 여기 있군요.”
다른 책에서 멋진 구절을 하나 더 찾았대. 찾는 동안 기다려 달라는 쌤의 젠틀한 부탁! '여기 있네' 하고 찾아냈을 때 쌤의 표정이 얼마나 뿌듯했을지 상상해 봐. 거의 보물찾기 성공한 표정 아니겠어?
In Under the Eye of the Clock, by Christopher Nolan, the main character is a young man who is facing some extraordinary challenges.
크리스토퍼 놀란이 쓴 '시계의 눈 아래에서'라는 책의 주인공은 평범하지 않은 도전에 직면한 한 청년이다.
자, 이제 진짜 감동적인 이야기가 시작될 모양이야.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쌤이 말하고 싶은 '친절'의 진짜 정체를 보여주려나 봐. 다들 손수건 준비해야 할지도 몰라.
There’s this one part where someone helps him: a kid in his class. On the surface, it’s a small gesture.
누군가 그를 돕는 대목이 하나 나온다. 바로 그의 반 친구 중 한 명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작은 몸짓에 불과하다.
터쉬먼 선생님이 소개하는 책 속의 한 장면이야. 반 친구가 건넨 아주 소소한 도움, 사실 학교에서 흔히 일어날 법한 일이잖아? 근데 이게 누군가에겐 인생을 통째로 뒤흔드는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걸 암시하고 있어.
But to this young man, whose name is Joseph, it’s... well, if you’ll permit me...”
하지만 조셉이라는 이름의 이 청년에게 그것은... 음, 저에게 허락하신다면 제가 직접 읽어드리죠...”
도움을 받은 청년의 이름은 조셉이야. 터쉬먼 선생님이 감정이 북받쳤는지 살짝 말을 고르며 뜸을 들이시네. '허락하신다면'이라니, 교장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젠틀하셔도 되는 거야? 이제 진짜 명대사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