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rasite breeds there, and then baby parasites get crapped out into the water by birds,
기생충은 그곳에서 번식하고, 아기 기생충들은 새들에 의해 물속으로 배설된다.
새의 뱃속이 이 녀석들에겐 허니문 하우스야. 거기서 알 까고 대대손손 번성하다가, 새가 시원하게 볼일을 보면 '쓩' 하고 다시 강물로 컴백하는 거지. 컴백 방식이 좀 더럽고 비위 상하지만, 이게 자연의 섭리라나 뭐라나.
whereupon they meet with a fish, and the cycle begins anew.
그러면 그것들은 물고기와 만나고, 순환은 다시 시작된다.
인생은 회전목마~가 아니라 기생충의 삶은 무한 루프야. 물속으로 나온 녀석들이 또 다른 물고기를 사냥(탑승)하면서 이 끔찍한 사이클이 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거지. 물고기들, 이제 다 죽었다!
I was trying to explain to him why this freaked me out so much but not really succeeding,
이것이 왜 나를 그토록 겁먹게 하는지 그에게 설명하려 했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에이자는 지금 데이비스에게 자신이 느끼는 공포의 정체를 필사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어. 근데 분위기는 로맨틱한데 내용은 기생충이니까, 데이비스 표정이 어떨지 상상이 가지? 마음은 굴뚝같은데 말이 꼬이는 그 답답한 상황이야.
and I recognized that I’d pulled the conversation very far away from the point where we’d held hands and been close to kissing,
그리고 우리는 손을 잡고 키스 직전까지 갔었는데, 내가 대화의 방향을 그 지점에서 아주 멀리 끌고 와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이자도 자기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현타가 온 거야! 손잡고 키스각 잡던 핑크빛 기류를 본인이 직접 '기생충'으로 박살 내버렸으니... 대화의 핸들을 너무 심하게 꺾어버린 거지.
that now I was talking about parasite-infected bird feces, which was more or less the opposite of romance,
이제 나는 기생충에 감염된 새의 배설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것은 로맨틱함과는 거의 정반대였다.
키스 타이밍에 '새 똥'이라니! 에이자 스스로도 이게 로맨스 파괴자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 근데 멈출 수가 없는 거야. 자기 속마음을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로맨틱한 분위기보다 더 컸던 거지.
but I couldn’t stop myself, because I wanted him to understand that I felt like the fish, like my whole story was written by someone else.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내가 그 물고기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나의 모든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쓰여진 것 같다는 사실을 그가 이해해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에이자가 왜 멈추지 못했는지 이유가 나와. 자기도 자기가 '기생충에 조종당해 수면 위로 떠올라 죽음을 기다리는 물고기' 같다고 느끼는 거야. 내 인생의 작가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그 공포를 데이비스가 알아주길 간절히 원하고 있어.
I even told him something I’d never actually said to Daisy or Dr. Singh or anybody—
데이지나 싱 박사님, 그 누구에게도 한 번도 실제로 말해 본 적 없는 사실조차 그에게 털어놓았다.
에이자가 비밀의 빗장을 완전히 열었어. 절친 데이지나 정신과 의사인 싱 박사님한테도 숨겼던 치부를 데이비스에게만 말한 거야. 이건 거의 영혼의 커밍아웃급 아니니?
that the pressing of my thumbnail against my fingertip had started off as a way of convincing myself that I was real.
그것은 내 엄지손톱으로 손가락 끝을 누르는 행위가 내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확신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에이자가 손가락 끝을 자꾸 괴롭히는 이유가 드디어 밝혀졌어. 단순히 습관이 아니라, '나 진짜 여기 있는 거 맞아?'라는 존재의 불안함을 통증으로 확인하려 했던 거지. 아픈 만큼 내가 진짜라는 게 느껴지나 봐.
As a kid, my mom had told me that if you pinch yourself and don’t wake up, you can be sure that you’re not dreaming;
어렸을 때 엄마는 내게 만약 스스로를 꼬집었는데도 잠에서 깨지 않는다면,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확신해도 좋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현실과 꿈을 구분하는 고전적인 방법이지! '볼 좀 꼬집어봐!'라는 말의 과학적(?) 근거랄까? 엄마의 이 사소한 가르침이 에이자에게는 평생을 괴롭히는 강박의 씨앗이 되어버린 거야.
and so every time I thought maybe I wasn’t real, I would dig my nail into my fingertip,
그래서 내가 혹시 가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손가락 끝에 손톱을 깊숙이 밀어 넣곤 했다.
불안함이 엄습할 때마다 에이자가 찾는 비상구야. 통증만이 자기를 현실에 붙들어 매주는 유일한 닻이었던 셈이지. '나 가짜 아냐?'라는 의심이 들 때마다 고통을 처방하는 에이자의 처절한 습관이야.
and I would feel the pain, and for a second I’d think, Of course I’m real.
그러면 통증이 느껴졌고, 아주 잠시 동안은 '당연히 난 진짜야'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드디어 찾은 안도감! 하지만 그건 'for a second', 겨우 1초 정도뿐이었어. 찰나의 확신을 위해 자기를 계속 다치게 하는 에이자가 너무 안쓰럽네. 고통이 곧 존재의 증명이라니 말이야.
But the fish can feel pain, is the thing. You can’t know whether you’re doing the bidding of some parasite, not really.
하지만 물고기도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자신이 기생충의 명령을 따르고 있는지 아닌지, 정말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에이자의 뼈 때리는 비유야. 기생충에 조종당하는 물고기도 아픔은 느끼거든. 근데 그게 자기 진짜 감정인지, 아니면 기생충이 수면으로 올라가게 하려고 조작한 가짜 감각인지 알 길이 없다는 거지. '나의 의지가 진짜 내 것인가'라는 소름 돋는 질문을 던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