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d had a sign of his own. MY BEAUTIFUL FAMILY, it read, and then underneath that (AND GUS).
아빠도 자기만의 팻말을 들고 있었다. ‘나의 아름다운 가족’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 밑에는 ‘(그리고 거스)’라고 덧붙여져 있었다.
거스까지 가족으로 쳐주는 아빠의 센스 좀 보세요. 저런 팻말 보면 피로가 싹 가실 것 같지 않아?
I hugged him, and he started crying (of course). As we drove home, Gus and I told Dad stories of Amsterdam,
나는 아빠를 껴안았고, 아빠는 울기 시작했다(물론 당연한 일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거스와 나는 아빠에게 암스테르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빠의 눈물은 이제 기본 옵션이죠 뭐. 암스테르담 썰 푸느라 차 안이 시끌벅적했겠어요.
but it wasn’t until I was home and hooked up to Philip watching good ol’ American television with Dad
하지만 내가 아빠와 함께 미국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필립에게 몸을 맡긴 채 집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집에 돌아와 기계에 몸을 맡깁니다. 역시 내 집 안방이 최고라는 건 환자들도 예외는 아닌가 봐요.
and eating American pizza off napkins on our laps that I told him about Gus.
무릎 위에 냅킨을 깔고 미국식 피자를 먹으면서 나는 아빠에게 거스의 상태에 대해 털어놓았다.
피자 먹으면서 거스 이야기를 꺼냅니다. 평화로운 일상 속에 폭탄 같은 진실을 던지는 기분일 거예요.
“Gus had a recurrence,” I said. “I know,” he said. He scooted over toward me, and then added,
“거스가 재발했어요.” 내가 말했다. “알고 있단다.” 그가 말했다. 그는 내 쪽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덧붙였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아빠의 대답이 왠지 더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바싹 다가앉는 몸짓에서 말보다 큰 위로가 느껴지네요.
“His mom told us before the trip. I’m sorry he kept it from you. I’m... I’m sorry, Hazel.”
“여행 가기 전에 그애 어머니가 말씀해 주셨어. 너한테 숨겨서 미안하구나. 미안하다, 헤이즐.”
부모님들은 여행 전부터 다 알고 계셨군요. 딸의 행복을 위해 슬픔을 삼켰을 부모님의 마음이 참 아플 것 같습니다.
I didn’t say anything for a long time. The show we were watching was about people who are trying to pick which house they are going to buy.
나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보고 있던 프로그램은 어떤 집을 살지 고르려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다.
TV에서는 집을 고르는 평범한 일상이 흐르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무너진 현실과 너무 대조적이라 더 공허한 기분이네요.
“So I read An Imperial Affliction while you guys were gone,” Dad said. I turned my head up to him.
“너희가 없는 동안 <거창한 슬픔>을 읽었단다.” 아빠가 말했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빠가 딸의 최애 책을 읽어보셨답니다. 딸의 세계를 이해해보려는 아빠의 노력이 참 가상하네요.
“Oh, cool. What’d you think?” “It was good. A little over my head. I was a biochemistry major, remember, not a literature guy.
“오, 멋지네요. 어떠셨어요?” “좋더구나. 나한테는 조금 어렵더만. 내가 생화학 전공이지 문학 쪽은 아니잖니.”
생화학 전공자에게 은유 가득한 소설은 좀 벅찰 수도 있죠. 전공 분야 아니라고 밑밥 까는 모습이 귀여우십니다 ㅋ.
I do wish it had ended.” “Yeah,” I said. “Common complaint.”
“결말이 제대로 났으면 좋았을 텐데.” “네.” 내가 말했다. “다들 그렇게 말해요.”
역시 결말 없는 게 제일 큰 불만입니다.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작가 집 찾아가고 싶게 만드는 결말이죠.
“Also, it was a bit hopeless,” he said. “A bit defeatist.” “If by defeatist you mean honest, then I agree.”
“그리고 좀 절망적이더라. 패배주의적이고.” “그게 정직하다는 뜻이라면, 저도 동의해요.”
패배주의와 정직함 사이의 팽팽한 의견 차이네요. 현실이 시궁창인데 희망만 노래하는 게 더 거짓말 같다는 뜻일까?
“I don’t think defeatism is honest,” Dad answered. “I refuse to accept that.”
“패배주의가 정직한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빠가 대답했다. “나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어.”
아빠는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절망을 정직함으로 포장하는 걸 용납하고 싶지 않으신 모양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