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t there is not one person who desires evil in the purest sense of the word, that is to say something “not beneficial.”
“순수한 의미에서 악, 즉 ‘자신에게 전혀 득이 되지 않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YOUTH: What does this have to do with me? PHILOSOPHER: At some stage in your life, you chose “being unhappy.”
청년: “그게 저랑 무슨 상관입니까?” 철학자: “당신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불행한 상태’를 선택했습니다.”
철학자는 앞선 장황한 설명을 통해 결국 청년에게 화살을 돌립니다. 당신이 지금 불행한 것도 그것이 본인에게 어떤 식으로든 득이 된다(agathon)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무서운 결론이네요.
It is not because you were born into unhappy circumstances or ended up in an unlucky situation.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났거나 불운한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 아니에요.”
It’s that you judged “being unhappy” to be good for you. YOUTH: Why? What for?
“당신 스스로 ‘불행한 상태’가 자신에게 득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죠.” 청년: “어째서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요?”
PHILOSOPHER: How do you justify this? Why did you choose to be unhappy? I have no way of knowing the specific answer or details.
철학자: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정당화하고 있을까요? 왜 불행을 선택했을까요? 구체적인 이유나 내막까지는 저로서도 알 길이 없습니다.”
Perhaps it will become clearer as we debate this. YOUTH: You are really trying to make a fool of me.
“아마 토론을 이어가다 보면 분명해지겠지요.” 청년: “선생님은 정말이지 저를 바보로 만들 작정이시군요.”
You think this passes for philosophy? I do not accept this at all.
“이게 철학이라고요? 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In spite of himself, the young man got up and glared at the philosopher.
청년은 울컥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철학자를 노려보았습니다.
철학자의 파격적인 주장에 청년이 감정을 폭발시키며 대화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장면입니다.
I chose an unhappy life? Because it was good for me? What an absurd argument!
‘내가 불행한 삶을 선택했다고? 그게 나한테 득이 되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야!’
Why is he going to such lengths to ridicule me? What did I do wrong?
‘왜 저렇게까지 나를 조롱하는 거지? 내가 뭘 잘못했다고?’
I’ll dismantle his argument, no matter what it takes. I’ll make him kneel before me. The young man’s face flushed with excitement.
‘어떻게든 그의 논리를 무너뜨리고 말겠어. 내 앞에 무릎 꿇게 만들고 말 테다.’ 청년의 얼굴은 흥분으로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People Always Choose Not to Change
인간은 언제나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새로운 소주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왜 변화를 원하면서도 실제로는 변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아들러식 해법이 제시될 차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