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 in Morrie’s office, life went on one precious day at a time.
여기 모리 교수님의 사무실에서는, 하루하루 소중하게 삶이 흘러가고 있었어.
세상은 파업에 살인 사건에 아주 난리 법석인데, 여기 교수님 방은 마치 시간이 느리게 가는 비밀의 화원 같아. 교수님한테는 이제 흘러가는 1분 1초가 황금보다 더 귀한 보물인 셈이지. 우리에겐 당연한 오늘이 누군가에겐 간절한 하루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야.
Now we sat together, a few feet from the newest addition to the house: an oxygen machine.
이제 우리는 집안의 새로운 식구인 산소 호흡기에서 몇 피트 떨어진 곳에 함께 앉아 있었어.
보통 'newest addition'이라고 하면 귀여운 아기나 강아지가 왔을 때 쓰는 말인데, 여기서는 산소 호흡기를 그렇게 표현했어.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이제는 교수님의 생명을 지켜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거지. 왠지 짠한 유머가 느껴지지 않니?
It was small and portable, about knee-high. On some nights, when he couldn’t get enough air to swallow,
그건 작고 휴대하기 편했어, 무릎 높이 정도였지. 어떤 밤에는, 숨을 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공기가 부족할 때면,
기계 자체는 무릎 높이 정도로 작고 귀엽게 생겼나 봐. 그런데 그 작은 기계가 없으면 교수님은 밤에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조차 힘들어하신대. '공기를 삼킨다(swallow air)'는 표현이 교수님이 겪는 고통을 아주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어.
Morrie attached the long plastic tubing to his nose, clamping on his nostrils like a leech.
모리는 긴 플라스틱 튜브를 코에 연결하고는, 거머리처럼 콧구멍에 꽉 고정했어.
산소 튜브를 코에 끼우는 모습을 '거머리(leech)'에 비유했어. 튜브가 콧구멍을 꽉 물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연상되지? 교수님의 생명을 붙잡아주고는 있지만, 동시에 교수님의 몸을 구속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좀 씁쓸한 장면이야.
I hated the idea of Morrie connected to a machine of any kind, and I tried not to look at it as Morrie spoke.
모리가 어떤 종류의 기계든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싫어서, 그가 말할 때 그 기계를 보지 않으려고 애썼어.
활기차고 지혜롭던 스승님이 기계에 의지해 숨을 쉬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미치의 마음이 느껴져. 기계를 보면 스승님의 죽음이 더 가까이 다가온 것 같아 자꾸 외면하게 되는 거지. 우리도 소중한 사람이 아플 때 애써 밝은 면만 보려고 하는 그런 마음 있잖아.
“Everyone knows they’re going to die,” he said again, “but nobody believes it. If we did, we would do things differently.”
"모든 사람이 자기가 죽을 거라는 걸 알지," 그가 다시 말했어, "하지만 아무도 그걸 정말로 믿지는 않아. 만약 우리가 정말 믿는다면, 우린 삶을 다르게 살 텐데 말이야."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으로는 안 믿는다는 말, 정말 공감되지 않니? 우리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건 알지만,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 하루를 낭비할 때가 많잖아. 모리 교수님은 죽음을 앞둔 상태라 이 평범한 진리가 누구보다 뼈아프게 다가오는 거야.
“So we kid ourselves about death,” I said. “Yes. But there’s a better approach.
"그러니까 우리는 죽음에 대해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거군요," 내가 말했어. "맞아. 하지만 더 나은 방법이 있단다."
'내 일은 아니겠지'라며 죽음을 외면하는 우리에게 모리 교수님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려는 순간이야. 죽음을 피하는 게 아니라 마주하는 방법 말이야. 미치도 교수님의 말에 점점 설득당하고 있는 것 같지?
To know you’re going to die, and to be prepared for it at any time. That’s better.
자기가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언제든 그럴 준비를 하는 것. 그게 더 나은 방법이지.
무섭고 피하고 싶은 이야기지만, 준비가 되어 있다면 삶이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말하고 있어. 죽음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남은 삶을 더 가치 있게 살기 위한 마음가짐을 배우는 셈이지. 교수님의 목소리가 낮고 차분하게 들리는 것 같아.
That way you can actually be more involved in your life while you’re living.”
그렇게 하면 살아있는 동안 네 삶에 실제로 더 깊이 몰입할 수 있게 된단다.
죽음을 늘 염두에 두는 게 오히려 삶을 더 진하게 살게 만든다는 모리 할배의 역설적인 조언이야. 죽음을 외면할 때보다 마주할 때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는 거지.
“How can you ever be prepared to die?” “Do what the Buddhists do. Every day, have a little bird on your shoulder that asks,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겠어요?" "불교 신자들이 하는 대로 해보렴. 매일 어깨 위에 작은 새 한 마리를 올려두고 묻게 하는 거지."
막막해하는 미치에게 모리 교수님이 귀여운 상상을 제안하고 있어. 어깨 위의 새라니, 왠지 디즈니 공주가 된 기분이겠지만 질문 내용은 꽤나 묵직하다구.
‘Is today the day? Am I ready? Am I doing all I need to do? Am I being the person I want to be?’”
'오늘이 그날인가? 난 준비됐나?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있나? 내가 되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되어 가고 있나?' 하고 말이야.
새가 던지는 질문들은 하나같이 인생의 본질을 꿰뚫고 있어. 죽음을 눈앞에 둔 모리 교수님이 매일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이기도 하지. 낭비되는 시간 없이 삶을 꽉 채워 살고 있는지 묻는 거야.
He turned his head to his shoulder as if the bird were there now. “Is today the day I die?” he said.
그는 마치 지금 그곳에 새가 있는 것처럼 어깨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오늘이 내가 죽는 날인가?" 그가 말했지.
모리 할배의 이런 연출은 제자 미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을 거야. 죽음을 멀리 있는 공포가 아니라, 어깨 위의 작은 새처럼 언제나 함께하는 친구로 받아들이는 교수님의 달관한 경지가 느껴지는 대목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