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I just started to cry. I feel their anguish as if it were my own.”
“그래서 그냥 울기 시작했지. 그들의 고통이 마치 내 고통인 것처럼 느껴져.”
교수님이 갑자기 수도꼭지 튼 것처럼 눈물이 쏟아지시는 거야. 타인의 아픔을 그냥 안됐다 정도로 느끼는 게 아니라, 자기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고 계셔. 초강력 공감 모드 발동 중이지.
“I don’t know any of these people. But—how can I put this?—I’m almost... drawn to them.”
“난 이 사람들 중 누구도 몰라. 하지만—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난 거의... 그들에게 끌리고 있어.”
일면식도 없는 보스니아 사람들이지만, 교수님은 자석에 끌리듯 그들에게 마음이 향하고 있어.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모든 생명이 다 소중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걸 몸소 느끼고 계신 거지. drawn to라는 표현이 교수님의 그 오묘한 감정을 딱 잘 설명해주네.
His eyes got moist, and I tried to change the subject, but he dabbed his face and waved me off.
그의 눈시울이 촉촉해졌고, 나는 화제를 돌리려고 애썼지만 그는 얼굴을 톡톡 닦아내더니 괜찮다며 나를 제지했어.
모리 교수님이 감수성 폭발해서 눈시울이 붉어지니까 미치가 당황한 모양이야. 분위기 갑분싸 될까 봐 화제를 돌리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교수님은 쿨하게 눈물 닦으면서 '아냐, 괜찮으니까 계속해'라고 하시는 장면이지. 교수님의 어른미가 뿜뿜하는 순간이야.
“I cry all the time now,” he said. “Never mind.” Amazing, I thought. I worked in the news business.
“난 이제 맨날 울어,” 그가 말했어. “신경 쓰지 마.” 놀라운걸, 난 생각했지. 난 뉴스 업계에서 일했잖아.
교수님이 본인 이제 울보 다 됐다고 아주 쿨하게 고백하시는데, 미치는 속으로 엄청 충격받았어. 사실 미치는 뉴스쟁이라 웬만한 비극에는 눈썹 하나 까딱 안 하는 강철 심장의 소유자였거든. 그런 미치 눈에 이런 솔직한 눈물이 얼마나 낯설고 신기하게 보였겠어?
I covered stories where people died. I interviewed grieving family members. I even attended the funerals. I never cried.
난 사람들이 죽는 기사들을 다뤘어. 슬퍼하는 유가족들을 인터뷰하기도 했지. 심지어 장례식에도 참석했어. 하지만 난 한 번도 울지 않았어.
미치의 과거 회상 타임! 뉴스 현장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으며 감정이 메마를 대로 메말라 버린 미치의 모습을 보여줘. 세상의 온갖 슬픔을 취재하면서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렸던 미치는 본인이 꽤나 이성적인 'T'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Morrie, for the suffering of people half a world away, was weeping.
모리 교수님은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고통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어.
지구 반대편이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남남인데, 교수님은 그들의 아픔을 자기 일처럼 아파하고 계셔. 감정이 메마른 미치에게는 이 광경이 정말 비현실적으로 보였을 거야. 진짜 '갓(God)공감' 능력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는 명장면이지.
Is this what comes at the end, I wondered? Maybe death is the great equalizer,
인생의 마지막에는 이런 게 찾아오는 걸까 하고 난 궁금해했어. 어쩌면 죽음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만드는 위대한 장치일지도 몰라.
눈물을 펑펑 쏟는 모리 교수님을 보면서 미치가 갑자기 철학자가 된 장면이야. 죽음이라는 무시무시한 녀석이 사실은 우리 모두를 차별 없이 하나로 이어주는 묘한 힘이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거지.
the one big thing that can finally make strangers shed a tear for one another.
낯선 사람들이 마침내 서로를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만드는 단 하나의 커다란 일 말이야.
죽음이라는 게 참 묘해. 생판 모르는 남이라도 그 고통을 보며 눈물 흘리게 만드는 엄청난 공감 능력을 소환하잖아. 미치는 그 '눈물'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마법 같은 도구라고 생각한 거야.
Morrie honked loudly into the tissue. “This is okay with you, isn’t it? Men crying?”
모리 교수님은 티슈에 대고 코를 크게 팽 풀었어. “자네, 이런 거 괜찮지? 남자가 우는 거 말이야.”
교수님이 아주 시원하게 코를 푸시더니 미치의 반응을 살피셔.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미치가 혹시 당황했을까 봐, 장난스럽게 툭 던지시는 질문이지.
“Sure,” I said, too quickly. He grinned. “Ah, Mitch, I’m gonna loosen you up.”
“물론이죠,” 난 너무 빨리 대답했어. 그는 활짝 웃었지. “아, 미치, 내가 자네의 그 뻣뻣한 태도를 좀 말랑하게 풀어줘야겠구먼.”
미치가 당황해서 0.1초 만에 “물론이죠!”라고 대답해버렸어. 교수님은 미치가 마음의 빗장을 꽉 걸어 잠그고 있다는 걸 단번에 눈치채고, 앞으로 미치를 좀 더 유연하고 감성적인 사람으로 변신시키겠다고 선언하시는 거야.
“One day, I’m gonna show you it’s okay to cry.” “Yeah, yeah,” I said. “Yeah, yeah,” he said.
“언젠가 내가 자네에게 우는 게 괜찮다는 걸 보여줄 거야.” “네, 네,” 내가 말했어. “그래, 그래,” 그가 말했지.
모리 교수님이 미치한테 '감성 교육' 제대로 시키겠다고 선전포고하시는 장면이야. 미치는 속으로 '에이, 설마요' 하면서 대충 대답하는데, 교수님도 똑같이 받아치시네. 두 사람 티키타카가 아주 찰져서 웃음이 절로 나와.
We laughed because he used to say the same thing nearly twenty years earlier. Mostly on Tuesdays.
우리는 웃었어, 왜냐하면 교수님이 거의 20년 전에도 똑같은 말을 하곤 하셨거든. 주로 화요일에 말이야.
갑자기 20년 전 대학 시절로 타임머신 탄 기분이지? 교수님은 예나 지금이나 미치한테 '너 좀 울어라'라고 하셨나 봐. 그리고 여기서 그 유명한 '화요일'이 드디어 등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