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ing on his stomach, his eyes shut, his mouth contorted in pain. “Ahhhhh, God,” he would moan. “Ahhhhhh, Jesus!”
배를 짓누르며 눈을 감고, 고통으로 입을 일그러뜨린 채였지. "아, 하느님," 그는 신음하곤 했어. "아, 예수님!"
고통이 너무 심해서 본능적으로 신을 찾을 수밖에 없는 처절한 상황이야. 삼촌의 비명이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네. 농담도 못 던질 만큼 숙연한 분위기지.
The rest of us—my aunt, his two young sons, me—stood there, silently, cleaning the plates, averting our eyes.
우리 남겨진 사람들인 숙모, 두 어린 아들, 그리고 나는 접시를 닦으며 시선을 피한 채 조용히 거기 서 있었어.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의 그 막막한 공기 알지? 다들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힘들어서 괜히 설거지나 하면서 딴청 피우는 거야. 그 침묵이 더 가슴 아프네.
It was the most helpless I have ever felt in my life.
그건 내 평생 느껴본 것 중 가장 무력한 기분이었어.
삼촌이 고통스러워하는데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때의 그 멘붕 상태야. 진짜 손발 다 묶인 채로 구경만 하는 기분이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상황이지.
One night in May, my uncle and I sat on the balcony of his apartment. It was breezy and warm.
5월의 어느 밤, 삼촌과 나는 아파트 발코니에 앉아 있었어. 바람은 선선했고 날씨는 따뜻했지.
날씨는 기가 막히게 평화로운데, 삼촌의 상태를 생각하면 이 고요함이 오히려 폭풍 전야처럼 느껴져서 더 애틋하고 슬픈 분위기야.
He looked out toward the horizon and said, through gritted teeth,
그는 지평선 쪽을 바라보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어.
삼촌이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하면서 감정을 억누르는 장면이야. 엉엉 우는 것보다 이렇게 이를 악물고 말하는 게 훨씬 더 가슴 아픈 법이지.
that he wouldn't be around to see his kids into the next school year.
아이들이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는 걸 지켜봐 줄 수 없을 거라고 말이야.
아이들이 자라는 걸 못 본다는 아빠의 절망적인 고백이야. 죽음을 앞둔 사람이 가장 미련이 남고 가슴 찢어지는 포인트가 바로 자식 문제지.
He asked if I would look after them. I told him not to talk that way. He stared at me sadly. He died a few weeks later.
삼촌은 내가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는지 물으셨어. 나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했지. 삼촌은 슬프게 나를 빤히 바라보셨어. 그러고는 몇 주 뒤에 돌아가셨지.
죽음을 직감한 삼촌이 남겨질 자식들을 부탁하는 가슴 찢어지는 장면이야. 미치는 차마 삼촌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부정해보지만, 결국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말아. 분위기가 상당히 무거우니까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라고.
After the funeral, my life changed. I felt as if time were suddenly precious, water going down an open drain, and I could not move quickly enough.
장례식이 끝나고 내 삶은 변했어. 나는 마치 시간이 갑자기 너무나도 소중한 것 같았고, 하수구로 흘러 내려가는 물처럼 느껴져서 충분히 빨리 움직일 수 없을 것만 같았지.
소중한 사람을 보내고 나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 하잖아? 미치도 인생 짧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거야. 시간이 하수구로 콸콸 빠져나가는 물처럼 느껴질 정도로 조급함이 극에 달한 상태를 묘사하고 있어.
No more playing music at half-empty night clubs. No more writing songs in my apartment, songs that no one would hear.
텅 빈 나이트클럽에서 더 이상 음악을 연주하지 않기로 했어. 내 아파트에서 아무도 듣지 않을 노래를 더 이상 쓰지도 않았지.
삼촌의 죽음 이후 미치는 꿈을 접고 현실을 택해. 화려한 무대도 아니고 손님도 없는 클럽에서 연주하던 무명 뮤지션 생활이 덧없게 느껴진 거지. 예술가의 낭만보다는 생존과 성취를 택하는 씁쓸한 터닝 포인트야.
I returned to school. I earned a master's degree in journalism and took the first job offered, as a sports writer.
나는 학교로 돌아갔어.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땄고, 스포츠 기자라는 처음 제안받은 직업을 바로 가졌지.
꿈을 포기하고 아주 현실적인 루트를 타기 시작하는 미치! 뮤지션에서 기자로 직업을 확 바꾸는데, 이게 바로 인생 제2막의 시작이야. 낭만보다는 실력을 쌓고 돈을 벌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돋보이지.
Instead of chasing my own fame, I wrote about famous athletes chasing theirs.
내 자신의 명성을 쫓는 대신에, 나는 자기들의 명성을 쫓는 유명한 운동선수들에 대해 글을 썼어.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접고 스포츠 기자가 된 미치의 상황이야.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대신 남의 성공을 기록하는 관찰자가 된 거지. 인생의 방향이 180도 바뀐 씁쓸하면서도 현실적인 순간이야.
I worked for newspapers and freelanced for magazines. I worked at a pace that knew no hours, no limits.
신문사에서 일하기도 하고 잡지사에 기고도 했어. 시간도 한계도 모르는 속도로 일했지.
완전 워커홀릭 모드로 변신한 미치의 모습이야. 삼촌의 죽음을 보고 '인생 짧다'는 걸 느껴서 그런지, 1분 1초를 아끼려고 미친 듯이 일에만 몰두하는 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