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 otherness, the flash of dark hair in his armpit, the buttons of bone at his clavicle.
그의 이질성, 그의 겨드랑이에서 언뜻 보이는 짙은 털, 그의 쇄골에 있는 뼈라는 이름의 단추들.
에리너의 관찰력이 너무 정밀해서 거의 현미경 수준이야. 겨드랑이 털(armpit hair)까지 묘사하다니! 특히 쇄골을 '뼈 단추(buttons of bone)'라고 표현한 건 왠지 기괴하면서도 에리너만의 독특한 미학이 느껴지는 대목이지.
The blood scent in the crook of his elbow. The warm softness of his lips, as he takes me in his arms and...
그의 팔꿈치 안쪽에서 풍기는 혈액의 향기. 그가 나를 두 팔로 안을 때 느껴지는 그의 입술의 따스한 부드러움, 그리고...
에리너는 전생에 뱀파이어였을까? '혈액의 향기(blood scent)'라니, 보통은 살 냄새라고 할 텐데 말이야. 로맨틱해야 할 상상 장면이 왠지 모르게 수술실이나 실험실 같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 에리너의 상상은 참으로 독보적이야.
“Erm, Eleanor? Hello? I was just saying... we’ll need to go now to catch the bus, if you’re coming to Mum’s?”
“음, 에리너? 저기요? 방금 말씀드렸잖아요... 어머니 댁에 가실 거면 지금 버스 타러 가야 한다고요.”
에리너의 화려한 꽃길 망상을 무참히 짓밟으며 레이먼드가 등장했어! '어머니 댁' 버스 시간이라니, 이보다 더 현실적일 수 있을까? 핑크빛 망상에서 잿빛 현실로 강제 소환된 에리너의 멍한 표정이 상상되지 않니?
I dragged myself back to the unwelcome present and the squat figure of Raymond, with his grubby hooded sweatshirt and dirty training shoes.
나는 반갑지 않은 현실로, 그리고 꾀죄죄한 후드 티셔츠와 더러운 운동화를 신은 레이먼드의 몽땅한 체구로 다시 나 자신을 끌어내렸다.
환상 속의 왕자님 음악가와 현실의 레이먼드... 그 격차가 영하 100도쯤 되는 것 같아. '몽땅한 체구(squat figure)'에 '더러운 운동화'라니, 레이먼드가 들으면 울겠는걸? 에리너는 지금 환상에서 깨어난 게 몹시 못마땅한 모양이야.
Perhaps Raymond’s mother would prove intelligent and charming company. I doubted it, based on the evidence of her progeny, but one never knew.
어쩌면 레이먼드의 어머니가 지적이고 매력적인 동행임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그녀의 자손이라는 증거에 근거하여 그럴 가능성을 의심했으나,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었다.
에리너는 지금 레이먼드를 보고 그 어머니를 짐작하고 있어. 아들이 이 모양(?)인데 엄마가 괜찮을 리가 있냐는 거지. 'Progeny(자손)'라는 어려운 단어로 레이먼드를 디스하는 에리너의 지적 수준 좀 봐! 부모를 보고 자식을 아는 게 아니라, 자식을 보고 부모를 견적 내는 에리너식 논리야.
“Yes, Raymond. I will accompany you to your mother’s house,” I said.
“알겠습니다, 레이먼드. 당신의 어머니 댁에 동행하죠.” 내가 말했다.
츤데레 에리너가 드디어 수락했어! 그런데 'Go with you'라고 안 하고 'Accompany(동행하다)'라는 단어를 쓰는 거 들었지? 버스 타러 가는 길인데 무슨 외교 사절단 파견하는 말투라니까. 에리너에겐 레이먼드와의 외출도 아주 공식적인 일정이야.
Of course Raymond didn’t have a car. I would guess he was in his midthirties, but there was something adolescent, not fully formed, about him.
물론 레이먼드에게는 차가 없었다. 내 짐작에 그는 서른 중반이었으나, 그에게는 청소년 같은, 아직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다.
에리너의 팩폭은 멈추지 않아. 레이먼드의 나이를 '30대 중반'으로 추정하면서도 '덜 자란 것 같다(not fully formed)'고 평가해. 에리너 눈에 레이먼드는 몸만 큰 사춘기 소년인가 봐. 레이먼드가 들으면 꽤나 억울하겠지?
It was partly the way he dressed, of course. I had yet to see him in normal, leather footwear; he wore training shoes at all times,
물론 부분적으로는 그가 옷을 입는 방식 때문이었다. 나는 그가 평범한 가죽 신발을 신은 모습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는 시종일관 운동화만 신었다.
레이먼드의 '운동화 사랑'이 에리너에겐 미성숙의 증거야. 가죽 구두(leather footwear) 한 번 안 신는 레이먼드의 패션을 아주 엄격하게 심사 중이지. 에리너는 신발로 사람의 급을 나누는 패션 보안관 같아. 레이먼드는 그냥 발이 편하고 싶었을 뿐인데!
and seemed to own a wide range of colors and styles. I have often noticed that people who routinely wear sportswear
그리고 그는 매우 다양한 색깔과 스타일의 운동화를 소유한 듯 보였다. 나는 일상적으로 운동복을 입는 사람들이 ~하다는 사실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에리너의 인류학적 관찰이 시작됐어! '일상적으로 운동복을 입는 사람들(people who routinely wear sportswear)'에 대한 에리너만의 데이터베이스가 있나 봐. 레이먼드의 다양한 운동화 컬렉션조차 에리너에겐 연구 대상일 뿐이야. '소유하다(own)'라는 단어를 써서 왠지 거창하게 들리게 만들지?
are the least likely sort to participate in athletic activity. Sport is a mystery to me.
운동 경기에 참여할 가능성이 가장 낮은 부류라는 사실 말이다. 스포츠는 내게 수수께끼 같은 것이다.
에리너의 대반전 결론! 운동복 입는 사람들이 오히려 운동을 제일 안 한대. 레이먼드도 딱 그런 부류라는 거지. 스포츠를 '수수께끼(mystery)'라고 부르며 아예 이해를 거부하는 에리너의 뻣뻣함이 정말 웃겨. 에리너에게 근육을 쓰는 행위는 비논리적인가 봐.
In primary school, sports day was the one day of the year when the less academically gifted students could triumph,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는 학문적 재능이 부족한 학생들이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일 년 중 유일한 날이었다.
에리너의 독설 섞인 회상이야. 공부 못하는 애들이 유일하게 기를 펴는 날이 바로 운동회였다고 아주 우아하게 돌려 까고 있어. '학문적 재능이 부족한(less academically gifted)'이라는 표현에서 에리너의 깐깐한 엘리트주의적 시선이 느껴지지 않니?
winning prizes for jumping fastest in a sack, or running from Point A to Point B more quickly than their classmates.
포대 자루 속에서 가장 빨리 뛰거나, 급우들보다 더 신속하게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달린 대가로 상을 받으면서 말이다.
포대 자루 경주나 달리기 같은 운동회 종목들을 'A 지점에서 B 지점까지 이동'이라고 표현하는 에리너의 건조함 좀 봐. 체육 시간을 무슨 물리학 실험 보고서 쓰듯이 설명하네? 에리너 눈에는 운동회가 그냥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모로 보이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