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erios.” You look down at your body, rendered mostly formless by a bleached white blanket.
“치리오스야.” 표백된 하얀 담요 때문에 형체가 거의 사라진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다.
엄마가 야심 차게 준비한 아침 메뉴는 국민 시리얼 '치리오스'였어. 아자는 그 말을 들으며 자기 몸을 보는데, 하얀 병원 담요에 푹 파묻혀서 어디가 팔이고 어디가 다리인지도 모를 정도로 축 처져 있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어.
You say, “Cheerios aren’t something you make,” and your mom laughs.
“치리오스는 만드는 게 아니잖아.”라고 말하자 엄마가 웃는다.
아자가 엄마의 '만들었다(made)'는 표현에 딴지를 걸고 있어. 시리얼은 그냥 그릇에 붓는 거지 요리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 아자의 냉소적인 유머 감각이 조금 살아난 것 같아 다행이야.
At the end of your bed you see a huge bouquet of flowers resting on a table, ostentatiously huge, complete with a crystal vase.
침대 발치에는 테이블 위에 놓인 거대한 꽃다발이 보인다. 과시하듯 커다란 그 꽃다발은 크리스탈 화병에 꽂혀 있다.
데이비스가 보낸 꽃다발이야. 부잣집 아들내미답게 꽃다발 스케일이 어마어마하지. 아자는 지금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데, 발치에 놓인 그 꽃다발이 거의 정원 수준이라 좀 당혹스러워하는 중이야. 꽃다발 플렉스가 장난 아니지?
“From Davis,” your mother says. Nearer to you, hovering above your formless body, a tray of food.
“데이비스가 보낸 거야.” 엄마가 말한다. 그보다 너에게 더 가까운 곳, 형체 없는 몸 위를 맴돌듯 놓인 것은 음식 쟁반이다.
엄마가 꽃의 정체를 알려주네. 하지만 아자에게 지금 더 중요한 건 꽃보다는 코앞에 있는 밥 쟁반이야. 아자가 담요에 푹 파묻혀서 자기 몸이 어딨는지도 모르겠는데, 그 위에 쟁반이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묘사하고 있어. 영혼 가출 직전의 상태랄까?
You swallow. You look at the Cheerios, bobbing in milk. Your body hurts.
침을 삼킨다. 우유 속에서 넘실거리는 치리오스를 바라본다. 온몸이 아프다.
아자가 이제 밥을 먹으려는데, 목구멍으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하고 긴장된 순간이야. 우유 위에 둥둥 떠 있는 시리얼을 보는데, 식욕은커녕 온몸의 통증이 몰려오고 있어. 밥 한 술 뜨는 게 거의 에베레스트 등반급 난이도인 셈이지.
A thought crosses your mind: God only knows what you inhaled while you were asleep. It’s not over.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자는 동안 무엇을 들이마셨을지는 오직 신만이 아시리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 병원에서 좀 쉬나 했더니, 아자의 뇌내 빌런인 '강박'이 다시 복귀했어. '자는 동안 병원 공기 속에 나쁜 균이 섞여 있었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야. 평화로운 아침인 줄 알았는데 지옥의 2라운드 시작인 거지.
You lie there, not even thinking really, except to try to consider how to describe the hurt,
당신은 그곳에 누워 있다. 실제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이 고통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고민할 뿐이다.
아자가 병원 침대에 시체처럼 누워 있어. 겉보기엔 멍 때리는 것 같지만, 머릿속은 풀가동 중이지. 자기 안의 그 형체 없는 고통을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단어를 고르는 중이야. 고통과 1:1 면담 신청한 상황이랄까?
as if finding the language for it might bring it up out of you.
마치 그 고통을 설명할 언어를 찾아내면 그것이 몸 밖으로 빠져나올지도 모른다는 듯이.
아자는 고통에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 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은 무섭지만, 이름이 생기고 설명이 가능해지면 왠지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품는 거지. 말하자면 '언어 퇴마술'을 시도하는 거야.
If you can make something real, if you can see it and smell it and touch it, then you can kill it.
어떤 존재를 실재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을 보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다면, 비로소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서운 영화에서도 괴물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이 제일 무섭잖아? 아자도 내면의 형체 없는 괴물을 시각화, 후각화, 촉각화해서 '실재하는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해. 그래야 멱살이라도 잡고 끝낼 수 있으니까. '보여야 때리지!'라는 아자의 절규야.
You think, it’s like a brain fire. Like a rodent gnawing at you from the inside. A knife in your gut. A spiral. Whirlpool. Black hole.
뇌에 불이 난 것 같다. 쥐 한 마리가 안쪽에서부터 갉아먹는 것 같다. 배 속에 박힌 칼날 같다. 나선. 소용돌이. 블랙홀 같다고 당신은 생각한다.
아자가 드디어 찾아낸 '고통의 이름'들이야. 불, 쥐, 칼, 소용돌이... 듣기만 해도 피곤해지는 단어들이지? 단순히 '아파요'라고 하기엔 너무 역부족이니까 이런 파괴적인 비유를 동원해서 자기 뇌 속의 아수라장을 보여주는 거야.
The words used to describe it—despair, fear, anxiety, obsession—do so little to communicate it.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단어들—절망, 공포, 불안, 강박—은 그 고통을 전달하는 데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단어장 좀 외웠다고 해서 이 지옥 같은 기분이 설명될 리가 없지. 아자는 '불안해요'라는 말 한마디가 자기 속을 갉아먹는 괴물에 비해 얼마나 하찮고 무력한지 깨닫고 있어. 언어라는 도구가 고통의 크기를 못 담아내는 상황이야.
Maybe we invented metaphor as a response to pain.
어쩌면 인간은 고통에 대한 반응으로 은유를 발명했을지도 모른다.
"아파요"라는 말로는 도저히 부족하니까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아요" 같은 비유를 쓰게 된 거 아닐까? 아자는 인류가 시인이 된 이유가 사실은 다들 너무 아파서였다는 철학적인 가설을 세우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