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erios.” You look down at your body, rendered mostly formless by a bleached white blanket.
“치리오스야.” 당신은 하얗게 표백된 담요 아래로 형체가 희미해진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다.
You say, “Cheerios aren’t something you make,” and your mom laughs.
당신이 “치리오스는 ‘만드는’ 게 아니잖아.”라고 말하자 엄마가 웃음을 터뜨린다.
단순히 그릇에 담기만 하면 되는 시리얼을 만들어 왔다고 표현한 엄마의 작은 말실수와 에이자의 반응이 긴박했던 전날 밤과 대비되어 일상의 안도감을 줍니다.
At the end of your bed you see a huge bouquet of flowers resting on a table, ostentatiously huge, complete with a crystal vase.
침대 발치 탁자 위에 놓인 거대한 꽃다발이 보인다. 크리스털 화병에 꽂힌, 과시하듯 커다란 꽃다발이다.
“From Davis,” your mother says. Nearer to you, hovering above your formless body, a tray of food.
“데이비스가 보낸 거야.” 엄마가 말한다. 좀 더 가까운 곳, 형체 없는 몸 위로 식사 쟁반이 놓인다.
You swallow. You look at the Cheerios, bobbing in milk. Your body hurts.
마른침을 삼킨다. 우유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치리오스를 바라본다. 몸이 아프다.
A thought crosses your mind: God only knows what you inhaled while you were asleep. It’s not over.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잠든 동안 대체 무엇을 들이마셨을지는 오직 신만이 아실 터였다. 끝나지 않았다.
병실의 공기를 통해 세균이 침투했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다시 고개를 듭니다. 폭풍 같은 밤이 지나도 강박의 소용돌이는 멈추지 않았음을 암시합니다.
You lie there, not even thinking really, except to try to consider how to describe the hurt,
당신은 거기 누워 있다. 아픔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말고는 딱히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로.
as if finding the language for it might bring it up out of you.
마치 고통을 설명할 언어를 찾아내면 그것을 몸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언어화할 수 없는 고통을 언어로 정의함으로써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If you can make something real, if you can see it and smell it and touch it, then you can kill it.
무언가를 실체화할 수 있다면, 보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 존재로 만든다면, 그것을 죽일 수도 있을 테니까.
You think, it’s like a brain fire. Like a rodent gnawing at you from the inside. A knife in your gut. A spiral. Whirlpool. Black hole.
당신은 생각한다. 이건 뇌 속에 난 불과 같다. 안쪽에서 나를 갉아대는 쥐새끼 같다. 내장을 찌르는 칼이다. 나선이다. 소용돌이다. 블랙홀이다.
강박과 고통을 묘사하는 아자의 처절한 비유들이 나열되고 있습니다. 그 중 나선(spiral)은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상징이기도 하죠.
The words used to describe it—despair, fear, anxiety, obsession—do so little to communicate it.
절망, 공포, 불안, 강박 같은 단어들은 이 감각을 전달하기에 너무나 보잘것없다.
임상적인 용어들이 실제로 겪는 지옥 같은 고통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을 꼬집고 있습니다.
Maybe we invented metaphor as a response to pain.
어쩌면 우리는 고통에 대응하기 위해 비유라는 것을 발명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