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wearing old jeans, which had once been tight but now sagged in weird places,
한때는 딱 맞았지만 이제는 엉뚱한 곳들이 헐렁해진 낡은 청바지와,
낡은 청바지가 갑자기 신경 쓰이기 시작했네요. 평소에는 아무렇게나 잘만 입고 다녔을 텐데 말입니다.
and a yellow T-shirt advertising a band I didn’t even like anymore.
이제는 좋아하지도 않는 밴드의 로고가 박힌 노란 티셔츠 차림이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밴드 티셔츠까지 패션 오점으로 보입니다. 저 소년의 시선이 꽤나 신경 쓰이는 모양이네요.
Also my hair: I had this pageboy haircut, and I hadn’t even bothered to, like, brush it.
머리 모양도 엉망이었다. 빗질조차 하지 않은 단발머리였다.
빗질도 안 한 머리카락이 원망스러운 순간입니다. 사랑은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패션 점검을 부르는 법이죠.
Furthermore, I had ridiculously fat chipmunked cheeks, a side effect of treatment.
게다가 치료 부작용으로 다람쥐처럼 볼이 통통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다람쥐 볼처럼 부은 얼굴이 콤플렉스로 느껴지나 봅니다. 약 부작용이라 어쩔 수 없는데도 마음이 쓰이는 것 같네요. (헤이즐아 다람쥐 볼은 원래 귀여운 법이야 ㅠ)
I looked like a normally proportioned person with a balloon for a head. This was not even to mention the cankle situation.
평범한 체구의 몸 위에 풍선을 달아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코끼리 발목처럼 부은 다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얼굴이 붓는 걸 풍선에 비유했네요. 외모에 민감한 십 대 소녀에게 '코끼리 발목'이라는 자학은 참 뼈아픈 표현이죠?
And yet—I cut a glance to him, and his eyes were still on me. It occurred to me why they call it eye contact.
그런데도 슬쩍 훔쳐보니 그는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왜 '눈을 맞춘다'고 표현하는지 알 것 같았다.
외모 자신감이 바닥인데도 소년의 시선은 고정되어 있습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운명적 눈맞춤'의 시작일까요?
I walked into the circle and sat down next to Isaac, two seats away from the boy.
나는 안으로 들어가 소년과 두 칸 떨어진 아이작 옆에 자리를 잡았다.
일부러 거리를 두면서도 의식은 온통 그쪽으로 가 있네요.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자리 배치입니다.
I glanced again. He was still watching me. Look, let me just say it: He was hot.
다시 봐도 그는 여전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자, 솔직히 말하겠다. 그는 잘생겼다.
드디어 본심이 나왔습니다. '잘생겼다' 한 마디면 모든 상황이 납득되는 마법이죠. (헤이즐아 얼굴이 개연성이고 서사라는 거 다 알아 ㅋ)
A nonhot boy stares at you relentlessly and it is, at best, awkward and, at worst, a form of assault.
못생긴 남자가 그렇게 끈질기게 쳐다보면 어색하거나 최악의 경우 성희롱처럼 느껴지겠지만,
이런 냉정한 팩트 폭격을 보시죠. 외모에 따른 시선의 온도 차이를 아주 현실적으로 꼬집었네요.
But a hot boy... well. I pulled out my phone and clicked it so it would display the time: 4:59.
잘생긴 남자가 그러면... 글쎄. 나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4시 59분.
잘생긴 소년의 시선은 폭력이 아니라 설렘이 되나 봅니다. 민망함을 감추려 폰을 보는 모습이 딱 사춘기 소녀답죠?
The circle filled in with the unlucky twelve-to-eighteens, and then Patrick started us out with the serenity prayer:
불운한 열두 살에서 열여덟 살 사이의 아이들로 원이 채워지자, 패트릭이 평온을 비는 기도로 모임을 시작했다.
불운한 십 대들이 모인 이 자리에 기도가 시작됩니다. 평온을 빈다는 게 참 역설적으로 들리기도 하네요.
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not change,
“하느님, 제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유명한 기도문의 첫 구절입니다. 바꿀 수 없는 암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이들에게는 얼마나 무거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