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that therefore all such thoughts were wasted moments in a life composed of a definitionally finite set of such moments.
그러므로 그런 모든 생각은 한정된 삶의 순간들로 이루어진 인생에서 그저 낭비일 뿐이었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걱정으로 낭비되는 순간들이 유독 아깝게 느껴지는군요. 정해진 결말을 아는 이의 서글픈 계산법입니다.
I even tried to tell myself to live my best life today. For the longest time I couldn’t figure out why something a stranger had written on the Internet
심지어 '오늘을 최고의 날로 살자'고 다짐까지 해보았다. 인터넷에서 낯선 이가 남긴 글이 왜 나를 이토록 괴롭히는지 오랫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오늘을 즐기자고 다짐하지만 모르는 사람의 글 한 줄에 마음이 무너집니다. 타인의 슬픔이 자신의 미래처럼 느껴져서 그런 걸까요?
to a different (and deceased) stranger was bothering me so much and making me worry that there was something inside my brain—
이미 사망한 다른 낯선 이에게 쓴 그 글이 왜 나를 이토록 걱정하게 만들고, 내 머릿속에 뭔가가 있다는 의심을 하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죽은 이에게 남긴 추모 글이 산 사람의 평화를 깨뜨리고 있습니다. 불안이라는 건 참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같네요.
which really did hurt, although I knew from years of experience that pain is a blunt and nonspecific diagnostic instrument.
실제로 머리가 아프긴 했지만, 통증이란 건 무디고 비특이적인 진단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수년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통증이 반드시 암의 진행을 뜻하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군요. 고통에 익숙해진다는 건 참 씁쓸한 전문성인 것 같습니다.
Because there had not been an earthquake in Papua New Guinea that day, my parents were all hyperfocused on me,
그날 파푸아뉴기니에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부모님은 온통 나에게만 집중하고 계셨다.
부모님의 관심이 온통 딸에게 쏠려 있어서 숨 쉴 틈이 없어 보이죠. (관심이 너무 뜨거워서 주인공은 지금 중력 10배 체험 중이네 ㅋ) 조용한 집안 분위기가 오히려 더 숨 막히는 법입니다.
and so I could not hide this flash flood of anxiety. “Is everything all right?” asked Mom as I ate.
덕분에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불안감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내가 밥을 먹는데 엄마가 물으셨다. "괜찮니?"
엄마의 다정한 질문이 때로는 홍수처럼 밀려드는 불안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간신히 세워둔 감정의 둑이 위태로워 보이네요.
“Uh-huh,” I said. I took a bite of burger. Swallowed. Tried to say something that a normal person whose brain was not drowning in panic would say.
"응." 나는 버거를 한 입 베어 물고 삼켰다. 패닉에 빠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며 말을 내뱉었다.
패닉을 숨기려고 햄버거를 씹는 모습이 영혼 가출 상태처럼 보이네요. 평범함을 연기하는 것도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일이죠?
“Is there broccoli in the burgers?” “A little,” Dad said. “Pretty exciting that you might go to Amsterdam.”
"버거에 브로콜리 들어갔어요?" "조금 들어갔지." 아빠가 대답하셨다. "암스테르담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니 정말 기대되는구나."
아빠는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암스테르담 여행 얘기를 꺼내십니다. 어색한 식탁을 수습하려는 부모님의 노력이 눈물겹네요.
“Yeah,” I said. I tried not to think about the word wounded, which of course is a way of thinking about it.
"네." 나는 '상처 입은'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물론 그런 노력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그 단어를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지만.
어떤 단어를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그 단어에 더 갇히게 되죠. 생각의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주인공이 안쓰럽네요 뭐 ㅋ.
“Hazel,” Mom said. “Where are you right now?” “Just thinking, I guess,” I said.
"헤이즐," 엄마가 부르셨다. "지금 무슨 생각 하니?" "그냥 생각 좀 하고 있었어요."
엄마의 레이더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조용해 보여도 속으로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중이라는 걸 눈치채신 모양이죠.
“Twitterpated,” my dad said, smiling. “I am not a bunny, and I am not in love with Gus Waters or anyone,” I answered, way too defensively.
"사랑에 빠져서 정신이 없나 보구나." 아빠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전 토끼가 아니에요. 거스나 그 누구와도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고요." 나는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대답했다.
아빠는 그저 딸이 연애 때문에 설레는 줄로만 알고 계시네요. (아빠 눈에는 딸이 연애 중이라 넋 나간 토끼처럼 보이나 봐 ㅋ) 주인공은 거의 정색하며 방어막을 칩니다.
Wounded. Like Caroline Mathers had been a bomb and when she blew up everyone around her was left with embedded shrapnel.
상처. 마치 캐롤라인 매더스가 폭탄이었고, 그녀가 터졌을 때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파편이 박힌 것만 같았다.
죽은 사람이 남긴 고통을 파편에 비유하는 표현이 아주 날카롭습니다. 자신이 남길 상처가 타인에게 박힐까 봐 벌써부터 두려운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