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ws were forbidden to attend theaters, movies or any other forms of entertainment;
극장이나 영화관, 그 밖의 모든 오락 시설에 가는 것도 안 됐어.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안네에게 이건 정말 가혹한 형벌이었을 거야. 10대 소녀의 유일한 낙인 스트레스 풀 곳들이 하나씩 무참히 사라지고 있어.
Jews were forbidden to use swimming pools, tennis courts, hockey fields or any other athletic fields;
수영장, 테니스 코트, 하키 경기장 같은 운동 시설도 이용할 수 없었어.
이제 운동도 마음대로 못 해? 몸이 근질거려서 어떻게 참았을까 몰라. 정말 숨 쉴 구멍이란 구멍은 다 막아버리는 독일군들, 정말 너무하지 않니?
Jews were forbidden to go rowing; Jews were forbidden to take part in any athletic activity in public;
보트를 젓는 것도 안 됐고, 공공장소에서 운동 경기에 참여하는 것도 금지됐지.
'public'이라는 글자만 봐도 안네는 가슴이 철렁했을 것 같아. 남들 다 하는 건강한 활동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못 한다는 건 정말 비참한 일이었을 거야.
Jews were forbidden to sit in their gardens or those of their friends after 8 P.M.;
저녁 8시 이후에는 자기 집 정원이나 친구네 정원에 앉아 있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어.
내 집 마당에도 마음대로 못 앉아 있다니, 이건 뭐 거의 가택 연금 수준 아니니? 시원한 밤바람 쐬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것도 죄가 되는 말도 안 되는 세상이었어.
Jews were forbidden to visit Christians in their homes; Jews were required to attend Jewish schools, etc.
기독교인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것도 안 됐고, 학교도 유대인 학교만 다녀야 했어. 그 밖에도 제약이 정말 많았지.
친구 관계까지 종교로 갈라놓다니 히틀러는 정말 지독해. '등등(etc.)'이라는 말 뒤에 얼마나 많은 슬픈 금지 사항들이 더 숨어 있을까 생각하면 안네가 너무 안쓰러워.
You couldn’t do this and you couldn’t do that, but life went on.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온통 금지투성이였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됐어.
하지 말라는 게 너무 많아서 숨이 턱 막힐 지경인데, 신기하게도 사람은 또 그 상황에 적응하며 살아가게 되더라. 안네의 덤덤한 말투가 오히려 그 시절의 고단함을 더 잘 보여주는 것 같아.
Jacque always said to me, “I don’t dare do anything anymore, ‘cause I’m afraid it’s not allowed.”
자클린은 항상 나에게 이렇게 말했어. “난 이제 아무것도 못 하겠어. 혹시 금지된 일일까 봐 너무 무서워.”
친구 자크의 말에서 당시 유대인들이 느꼈던 공포가 그대로 느껴지지 않니? 숨 쉬는 것조차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은 그 압박감... 상상만 해도 너무 답답해서 한숨이 나와.
In the summer of 1941 Grandma got sick and had to have an operation, so my birthday passed with little celebration.
1941년 여름에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수술을 받으셔야 했어. 그래서 내 생일은 축하 파티도 거의 없이 지나갔지.
전쟁통에 할머니까지 아프시니 안네의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10대 소녀에게 생일 파티는 1년 중 가장 큰 낙인데, 그걸 포기해야 했던 안네의 성숙함이 돋보이는 장면이야.
In the summer of 1940 we didn’t do much for my birthday either, since the fighting had just ended in Holland.
1940년 여름에도 생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어. 네덜란드에서 전투가 막 끝난 직후였거든.
2년 연속으로 생일을 제대로 못 보낸 안네. 1940년은 전쟁 때문에, 1941년은 할머니 때문에... 정말 '운수 나쁜 생일'의 연속이었네. 그래도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거 보면 안네는 참 강한 아이야.
Grandma died in January 1942. No one knows how often I think of her and still love her.
할머니는 1942년 1월에 돌아가셨어. 내가 얼마나 자주 할머니를 생각하는지, 그리고 여전히 얼마나 할머니를 사랑하는지 아무도 모를 거야.
할머니를 향한 안네의 깊은 사랑이 느껴져서 코끝이 찡해져. 일기장에만 털어놓는 이 진심, 할머니도 하늘나라에서 다 보고 계시겠지? 안네에게 할머니는 정말 큰 안식처였나 봐.
This birthday celebration in 1942 was intended to make up for the others, and Grandma’s candle was lit along with the rest.
그래서 1942년 생일 파티는 지난번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마련됐고, 케이크에는 할머니를 위한 촛불도 다른 초들과 함께 밝혀졌어.
드디어 제대로 된 생일을 보냈구나! 돌아가신 할머니를 잊지 않고 촛불 하나를 따로 챙기는 안네의 마음씨가 정말 예쁘지 않니? 지난 2년의 보상 같은 파티라니, 얼마나 신났을까!
The four of us are still doing well, and that brings me to the present date of June 20, 1942, and the solemn dedication of my diary.
우리 가족 네 명은 아직 잘 지내고 있어. 자, 이제 다시 오늘 날짜인 1942년 6월 20일로 돌아와서, 내 일기장에게 바치는 이 소중한 첫 인사를 마무리할게.
안네가 일기장을 받은 지도 벌써 일주일 정도 지났어. 이제 자기소개는 대충 끝났고, '키티'라는 가상의 친구에게 본격적으로 마음을 열고 일기를 헌정하려는 폼을 잡는 순간이야. 아주 경건한(?) 의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