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March of 1995, a limousine carrying Ted Koppel, the host of ABC-TV's “Nightline”
1995년 3월, ABC 방송국의 '나이트라인' 진행자인 테드 코플을 태운 리무진 한 대가
미국 방송계의 전설, 테드 코플이 등장했어! 그것도 으리으리한 리무진을 타고 말이지. 시골 마을에 리무진이 나타났다는 건, 전 국민이 주목할 만한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신호야. 모리 교수님 댁 앞에 대스타가 떴다구!
pulled up to the snow-covered curb outside Morrie's house in West Newton, Massachusetts.
매사추세츠주 웨스트 뉴턴에 있는 모리 교수님 댁 앞, 눈 덮인 연석에 차를 세웠어.
드디어 대스타 테드 코플이 탄 리무진이 교수님 댁에 도착했어! 눈이 소복이 쌓인 배경이라니, 영화 속 한 장면 같지 않니? 여기서부터 모리 교수님의 '마지막 강의'가 본격적으로 세상을 향해 빌드업되는 순간이야.
Morrie was in a wheelchair full-time now, getting used to helpers lifting him like a heavy sack from the chair to the bed and the bed to the chair.
모리 교수님은 이제 항상 휠체어 신세를 지고 계셨고, 도우미들이 자기를 무거운 자루처럼 들어서 의자에서 침대로, 침대에서 의자로 옮겨주는 것에 익숙해지는 중이셨어.
교수님의 병세가 꽤 깊어졌어. 이제 혼자서는 꼼짝도 못 하시는 상황이지. 자기를 '무거운 자루'에 비유하시다니, 슬프면서도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교수님의 담담함이 느껴져서 마음이 짠하네.
He had begun to cough while eating, and chewing was a chore. His legs were dead; he would never walk again.
식사하실 때 기침을 하기 시작하셨고, 씹는 것조차 힘든 일이 되어버렸어. 다리는 감각이 없었고, 다시는 걷지 못하실 상태였지.
먹는 즐거움까지 앗아가다니 루게릭병은 정말 잔인해. '씹는 게 일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면 얼마나 기력이 쇠하셨는지 짐작이 가니? 다리는 이미 '죽었다'고 표현할 만큼 상태가 심각해졌어.
Yet he refused to be depressed. Instead, Morrie had become a lightning rod of ideas.
하지만 교수님은 우울함에 빠지길 거부하셨어. 대신, 모리 교수님은 영감의 피뢰침 같은 존재가 되셨지.
몸이 이렇게 망가지는데도 교수님 멘탈은 진짜 '갓생' 그 자체야. 우울함에 잡아먹히는 대신, 오히려 세상에 전할 소중한 생각들을 끌어모으는 중심점이 되셨어. 피뢰침 비유는 정말 무릎을 탁 치게 만드네!
He jotted down his thoughts on yellow pads, envelopes, folders, scrap paper.
교수님은 노란색 메모지, 봉투, 서류철, 자투리 종이 가리지 않고 자기 생각들을 끄적여 내려가셨어.
몸은 마음대로 안 움직여도 머릿속 영감은 폭발하는 중이야. 눈에 보이는 종이란 종이는 다 동원해서 기록하시는 모습이 흡사 천재 작가 같지 않아? 역시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이 딱이야.
He wrote bite-sized philosophies about living with death's shadow: “Accept what you are able to do and what you are not able to do”;
교수님은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 사는 법에 대해 한입 크기의 철학적 문구들을 쓰셨어: "네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여라";
철학이라고 하면 머리 아프고 길 것 같지? 근데 교수님은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아주 '맛있는' 짧은 문장들로 정리해주셨어. 죽음이라는 무시무시한 녀석과 동거하면서 얻은 찐 내공이 느껴지는 대목이야.
“Accept the past as past, without denying it or discarding it”; “Learn to forgive yourself and to forgive others”;
"과거를 과거로 받아들여, 부정하거나 버리지 말고"; "너 자신을 용서하고 타인을 용서하는 법을 배워라";
과거에 묶여서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하는 거, 교수님은 그거 하지 말래. 그냥 인정하고 훌훌 털어버리는 게 제일 좋거든. 나 자신을 먼저 아껴줘야 남도 용서할 수 있다는 건 진짜 만고의 진리인 듯.
“Don't assume that it's too late to get involved.” After a while, he had more than fifty of these “aphorisms,” which he shared with his friends.
"뭔가에 참여하기에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 시간이 좀 흐른 뒤, 교수님은 이런 '격언'들을 50개 넘게 갖게 되셨고, 그걸 친구들과 나누셨어.
"이미 늦었어"라는 말은 핑계일 뿐이야. 죽음을 코앞에 둔 교수님도 이렇게 새로운 생각들을 나누고 계시잖아. 인생 명언 제조기 모리 교수님의 멋진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야!
One friend, a fellow Brandeis professor named Maurie Stein, was so taken with the words that he sent them to a Boston Globe reporter,
한 친구가, 그러니까 모리 슈타인이라는 이름의 브랜다이스 대학교 동료 교수인데, 그 글들에 너무 감명받아서 보스턴 글로브 기자한테 그 글들을 보냈어.
교수님 친구 중에 모리 슈타인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교수님이 쓰신 글을 보고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셨나 봐. 그래서 이걸 신문사에 냅다 제보해 버린 거지. 이게 바로 모리 교수님이 세상 밖으로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어!
who came out and wrote a long feature story on Morrie. The headline read: A PROFESSOR'S FINAL COURSE: HIS OWN DEATH
그 기자가 직접 찾아와서 모리에 관한 긴 특집 기사를 썼지. 헤드라인은 이랬어: 어느 교수의 마지막 강의: 자신의 죽음.
제보를 받은 기자가 교수님 댁으로 직접 출동했어! 그리고 교수님의 삶과 죽음을 다룬 아주 깊이 있는 기사를 냈는데, 제목부터가 예술이야. '자신의 죽음이 곧 마지막 강의'라니, 독자들 눈물샘 자극하기 딱 좋지?
The article caught the eye of a producer from the “Nightline” show,
그 기사가 '나이트라인' 프로그램 프로듀서의 눈에 띄었어.
신문에 실리자마자 바로 반응이 왔어! 미국 전역으로 방송되는 초인기 토크쇼 '나이트라인' 프로듀서의 레이더망에 딱 걸린 거지. 역시 좋은 콘텐츠는 누가 봐도 알아보는 법인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