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met every Wednesday in the basement of a stone-walled Episcopal church shaped like a cross.
모임은 매주 수요일, 십자가 모양으로 지어진 석조 성공회 교회의 지하에서 열렸다.
장소가 하필 교회 지하실입니다. 십자가 모양의 건물이라는 점이 묘하게 상징적이죠?
We all sat in a circle right in the middle of the cross, where the two boards would have met, where the heart of Jesus would have been.
우리는 모두 십자가의 정중앙, 그러니까 두 나무 판자가 만나는 지점이자 예수의 심장이 있었을 법한 위치에 둥글게 둘러앉았다.
예수의 심장 자리에 앉아 있다는 점을 콕 집어 말합니다. 장소 선정부터 리더의 의도가 다분해 보이네요.
I noticed this because Patrick, the Support Group Leader and only person over eighteen in the room,
내가 이걸 눈치챈 이유는 서포트 그룹의 리더이자 방 안에서 유일하게 열여덟 살이 넘은 패트릭 때문이었다.
리더 패트릭은 이 방의 최고령자입니다. 헤이즐이 이 사람을 어떻게 볼지 감이 오시나요?
talked about the heart of Jesus every freaking meeting, all about how we, as young cancer survivors,
그는 모임 때마다 지겹지도 않은지 예수의 심장에 대해 떠들어댔다. 우리 같은 어린 암 생존자들이
패트릭의 고정 레퍼토리가 시작됩니다. 매번 같은 소리를 들으니 헤이즐의 영혼 가출은 시간 문제겠네요.
were sitting right in Christ’s very sacred heart and whatever.
그리스도의 지극히 신성한 심장 바로 그 안에 앉아 있는 것이라는 둥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말이다.
성스러운 심장 운운하는 게 헤이즐에겐 그저 뻔한 소리로 들리나 봅니다. 뒤에 붙인 '어쩌구'에서 귀차니즘이 느껴지죠?
So here’s how it went in God’s heart: The six or seven or ten of us walked/wheeled in,
신의 심장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대략 이랬다. 예닐곱 명에서 열 명 남짓한 우리가 걷거나 휠체어를 타고 들어온다.
신의 심장 속의 실상은 걸어 오거나 휠체어를 탄 아이들로 채워집니다. 분위기가 꽤나 가라앉아 있죠?
grazed at a decrepit selection of cookies and lemonade, sat down in the Circle of Trust,
형편없는 쿠키와 레모네이드를 조금 집어 먹고 '신뢰의 원' 안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부실한 간식은 모임의 국룰일까요? 신뢰의 원이라고 부르지만 다들 표정은 안 봐도 비디오네요.
and listened to Patrick recount for the thousandth time his depressingly miserable life story—
그러고는 패트릭이 수천 번도 더 들려준, 지독하게 비참한 인생사를 경청한다.
리더의 자기 연민 가득한 인생사가 무한 반복됩니다. 주인공은 이걸 천 번은 들은 것 같다고 하네요.
how he had cancer in his balls and they thought he was going to die but he didn’t die and now here he is,
고환암에 걸려 다들 죽을 거라 생각했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아 지금 여기에 있다는 이야기.
죽음의 고비를 넘긴 패트릭의 생존 스토리가 이어집니다. 감동적이어야 하는데 헤이즐은 영 심드렁해 보이네요.
a full-grown adult in a church basement in the 137th nicest city in America,
미국에서 137번째로 살기 좋은 도시의 교회 지하실에 앉아 있는 다 큰 성인.
137위라는 구체적인 숫자가 포인트죠? 적당히 살기 좋지만 딱히 자랑할 정도는 아닌 그런 도시네요.
divorced, addicted to video games, mostly friendless, eking out a meager living by exploiting his cancertastic past,
이혼했고, 비디오 게임에 중독되었으며, 친구도 거의 없이 자신의 '찬란한 암 투병기'를 팔아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
현재 패트릭의 상태는 말 그대로 영혼 가출 직전입니다. 암 투병 경력을 생계 수단으로 쓰는 모습이 좀 짠하죠?
slowly working his way toward a master’s degree that will not improve his career prospects,
경력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될 석사 학위를 따려고 꾸역꾸역 공부하면서,
학위가 밥을 먹여주지는 않을 텐데 패트릭은 계속 달립니다. 자본주의가 낳은 비극적인 자기계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