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as the boy descended into a full tantrum. “Bye,” said Nora. “Yeah. Bye.”
동시에 아이는 본격적으로 떼를 쓰기 시작했다. “잘 가.” 노라가 말했다. “응. 잘 가.”
And Nora wondered what the difference had been. What had forced Mr Banerjee to go to the care home he’d been determined not to go to?
노라는 무엇이 차이를 만든 건지 궁금해졌다. 무엇이 바네르지 씨를 그토록 가기 싫어했던 요양원으로 몰아넣은 걸까?
She was the only difference between the two Mr Banerjees but what was that difference?
두 명의 바네르지 씨 사이에서 유일한 차이점은 노라 자신이었지만, 그 차이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What had she done? Set up an online shop? Picked up his prescription a few times?
그녀가 무엇을 했기에?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어준 것? 그를 위해 처방약을 몇 번 대신 받아준 것?
Never underestimate the big importance of small things, Mrs Elm had said. You must always remember that.
‘작은 것들의 커다란 중요성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마라’라고 엘름 부인은 말했었다. 그 말을 항상 기억해야만 한다.
She stared at her own window. She thought of herself in her root life, hovering between life and death in her bedroom – equidistant, as it were.
그녀는 자신의 집 창문을 빤히 쳐다보았다. 침실에서 삶과 죽음 사이를 배회하던 원래 삶의 자신을 떠올렸다. 말하자면 등거리의 상태였다.
등거리(equidistant)는 앞서 노라가 강을 헤엄쳐 건너던 기억에서 어느 쪽 강둑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 중간에 머물던 상태를 묘사할 때 썼던 표현입니다. 여기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던 자신의 위태로움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And, for the first time, Nora worried about herself as if she was actually someone else.
그리고 처음으로 노라는 마치 남의 일인 양 자기 자신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Not just another version of her, but a different actual person.
단지 또 다른 버전의 자신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실존 인물로서 말이다.
As though finally, through all the experiences of life she now had, she had become someone who pitied her former self.
마치 지금껏 겪은 수많은 삶의 경험을 통해, 마침내 예전의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Not in self-pity, because she was a different self now.
자기 연민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다른 자아가 되었기 때문이다.
Then someone appeared at her own window. A woman who wasn’t her, holding a cat that wasn’t Voltaire.
그때 그녀의 집 창가에 누군가 나타났다. 노라가 아닌 어떤 여자가, 볼테르가 아닌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노라가 사라진 원래 삶의 공간을 다른 누군가가 채우고 있는 모습입니다. 세상은 그녀가 없어도 어떻게든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대면하는 장면입니다.
This was her hope, anyway, even as she began to feel faint and fuzzy again.
다시 정신이 아득해지고 몽롱해지기 시작했지만, 어쨌든 이것이 그녀의 희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