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same dynamic with Mom and Dad, brothers and sisters: They were all trying to hook your attention.
엄마와 아빠, 그리고 형제자매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들 모두 여러분의 주의를 끌려고 애를 썼답니다.
온 가족이 아이의 주의력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일종의 주의력 쟁탈전을 묘사하고 있군요.
We also learn to hook the attention of other humans, and we develop a need for attention which can become very competitive.
우리 역시 타인의 주의를 끄는 법을 배우게 되는데, 여기서 비롯된 관심에 대한 욕구는 때로 아주 경쟁적으로 변하기도 해요.
관심에 대한 갈망이 경쟁적으로 변한다는 지적은, 우리가 왜 끊임없이 타인의 인정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지 그 심리적 배경을 잘 보여줍니다.
Children compete for the attention of their parents, their teachers, their friends. “Look at me! Look at what I’m doing! Hey, I’m here.”
아이들은 부모님이나 선생님, 친구들의 관심을 받으려고 경쟁하죠. “나 좀 봐! 내가 뭐 하는지 좀 봐! 나 여기 있단 말이야.”
The need for attention becomes very strong and continues into adulthood.
관심을 받고자 하는 욕구는 아주 강력해져서 어른이 된 후에도 계속 이어진답니다.
The outside dream hooks our attention and teaches us what to believe, beginning with the language that we speak.
외부의 꿈은 우리의 주의를 붙들어 매고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할지 가르쳐 주는데, 그 시작은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랍니다.
Language is the code for understanding and communication between humans.
언어는 인간 사이의 이해와 소통을 위해 약속된 기호와 같아요.
Every letter, every word in each language is an agreement.
어떤 언어든 그 안의 글자 하나, 단어 하나가 모두 하나의 ‘약속’인 셈이죠.
We call this a page in a book; the word page is an agreement that we understand.
우리가 이것을 책의 한 ‘페이지’라고 부르는 것도, 그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서로 약속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Once we understand the code, our attention is hooked and the energy is transferred from one person to another.
일단 이 기호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의 주의가 고정되고,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에너지가 전달된답니다.
It was not your choice to speak English. You didn’t choose your religion or your moral values — they were already there before you were born.
영어를 말하게 된 것은 여러분의 선택이 아니었어요. 종교나 도덕적 가치관 역시 여러분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곳에 정해져 있었던 것이고요.
원문에서는 English(영어)를 예로 들었지만, 이는 우리가 모국어를 선택할 수 없었음을 의미합니다. 사회가 미리 정해놓은 틀 안에서 우리의 삶이 시작되었음을 강조하고 있군요.
We never had the opportunity to choose what to believe or what not to believe. We never chose even the smallest of these agreements.
우리는 무엇을 믿고 믿지 않을지 스스로 선택할 기회가 전혀 없었어요. 아주 사소한 약속조차 우리가 직접 고른 게 아니었답니다.
We didn’t even choose our own name. As children, we didn’t have the opportunity to choose our beliefs,
심지어 우리 자신의 이름조차 우리가 정하지 않았지요. 어린아이였을 때는 우리의 신념을 선택할 기회가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