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f it had colonised every part of her. It reminded her that everyone was better off without her.
마치 절망이 그녀의 온몸을 장악한 듯했다. 모든 사람이 그녀 없는 세상에서 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You get near a black hole and the gravitational pull drags you into its its bleak, dark reality.
블랙홀에 가까이 가면 중력이 당신을 그 황량하고 어두운 현실 속으로 끌어당긴다.
The thought was like a ceaseless mind-cramp, something too uncomfortable to bear yet too strong to avoid.
그 생각은 끊이지 않는 마음의 경련 같았다. 견디기엔 너무 괴롭지만 피하기엔 너무 강력했다.
Nora went through her social media. No messages, no comments, no new followers, no friend requests.
노라는 소셜 미디어를 훑어보았다. 메시지도, 댓글도, 새로운 팔로워도, 친구 요청도 없었다.
She was antimatter, with added self-pity. She went on Instagram and saw everyone had worked out how to live, except her.
그녀는 자기 연민이 더해진 반물질이었다. 인스타그램에 접속하자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삶의 방식을 터득한 것처럼 보였다.
앞서 소제목으로도 나왔던 반물질(antimatter)은 일반적인 물질과 결합하면 소멸해버리는 성질을 가집니다.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한번 빗대어 표현하고 있네요.
She posted a rambling update on Facebook, which she didn’t even really use any more.
그녀는 이제 거의 사용하지도 않는 페이스북에 두서없이 긴 글을 하나 남겼다.
Two hours before she decided to die, she opened a bottle of wine.
죽기로 결심하기 2시간 전, 그녀는 와인 한 병을 땄다.
Old philosophy textbooks looked down at her, ghost furnishings from her university days, when life still had possibility.
오래된 철학 교과서들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삶에 여전히 가능성이 남아 있던 대학 시절의 유령 같은 잔재들이었다.
A yucca plant and three tiny, squat potted cacti.
유카 한 그루와 화분에 담긴 작고 뭉툭한 선인장 세 개가 보였다.
She imagined being a non-sentient life form sitting in a pot all day was probably an easier existence.
차라리 화분에 심긴 채 온종일 가만히 앉아 있는 무생물이 되는 편이 더 쉬운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She sat down at the little electric piano but played nothing. She thought of sitting by Leo’s side, teaching him Chopin’s Prelude in E Minor.
그녀는 작은 전자 피아노 앞에 앉았지만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았다. 레오 옆에 앉아 쇼팽의 전주곡 마단조를 가르쳐주던 때를 떠올렸다.
쇼팽의 전주곡 마단조(Op. 28, No. 4)는 특유의 우울하고 비장한 분위기로 유명한 곡입니다. 노라의 현재 심경과 무척 잘 어울리는 선곡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Happy moments can turn into pain, given time. There was an old musician’s cliché, about how there were no wrong notes on a piano.
행복했던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고통으로 변할 수 있다. 피아노에는 틀린 음이 없다는 음악가들의 진부한 명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