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tarted right away at the Montessori nursery school. I stayed there until I was six, at which time I started first grade.
가자마자 몬테소리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여섯 살 때까지 거기 있다가 1학년으로 입학했지.
네덜란드에서의 새로운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어! 유치원부터 초등학교까지, 안네가 한 계단씩 성장하는 과정이 보여. 몬테소리 학교에 다녔던 게 안네의 자유로운 글쓰기 실력에 도움이 됐을지도 몰라.
In sixth grade my teacher was Mrs. Kuperus, the principal. At the end of the year we were both in tears as we said a heartbreaking farewell,
6학년 때는 교장 선생님이신 쿠페루스 부인님이 담임이셨는데, 학년 말에 정말 가슴 아픈 작별 인사를 나누며 둘 다 엉엉 울었어.
안네가 선생님이랑 정이 정말 많이 들었나 봐. 교장 선생님이 직접 담임까지 맡으셨다니, 안네가 꽤 특별하고 사랑받는 학생이었을 것 같지? 작별하며 둘이서 엉엉 우는 모습이 눈에 선해.
because I’d been accepted at the Jewish Lyceum, where Margot also went to school.
내가 언니가 다니는 유대인 중등학교에 합격했거든.
이제 더 이상 일반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된 거야. 언니랑 같은 학교에 가게 된 건 다행이지만, 정든 선생님과 친구들을 떠나야 하는 건 여전히 열세 살 소녀에겐 가슴 아픈 일이지.
Our lives were not without anxiety, since our relatives in Germany were suffering under Hitler’s anti-Jewish laws.
독일에 있는 친척들이 히틀러의 유대인 탄압법 때문에 고통받고 있어서 우리 삶은 늘 불안의 연속이었어.
겉으로는 평범한 척 지내도 마음 한구석엔 항상 무거운 돌덩이가 얹혀 있는 기분이었을 거야. 고국 독일에서 전해오는 무서운 소식들이 안네네 가족을 얼마나 괴롭혔을지 상상이 가니?
After the pogroms in 1938 my two uncles (my mother’s brothers) fled Germany, finding safe refuge in North America.
1938년에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난 후, 엄마의 형제들인 두 외삼촌은 독일을 탈출해서 북미로 안전하게 망명을 가셨지.
외삼촌들은 정말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셨네. 'safe refuge'라는 말에서 안네가 느꼈을 안도감이 살짝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독일을 떠나지 못한 수많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깔려 있어.
My elderly grandmother came to live with us. She was seventy-three years old at the time.
연세 많으신 할머니가 우리와 함께 살러 오셨어. 그때 할머니는 일흔세 살이셨지.
이제 대가족이 됐네! 일흔세 살 할머니와 함께 사는 건 안네에게 또 다른 일상의 변화였을 거야. 할머니의 따뜻한 품이 안네에게는 이 불안한 시절을 버티는 큰 위로가 됐겠지?
After May 1940 the good times were few and far between: first there was the war, then the capitulation and then the arrival of the Germans,
1940년 5월 이후로 좋았던 시절은 가물에 콩 나듯 드물어졌어. 먼저 전쟁이 터졌고, 다음엔 항복 선언을 했고, 그 뒤엔 독일군이 들이닥쳤거든.
'few and far between'이라는 표현이 안네의 상황을 너무 잘 보여줘서 가슴이 아파. 평화가 깨지는 건 정말 한순간이구나. 행복했던 일상들이 도미노처럼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어.
which is when the trouble started for the Jews. Our freedom was severely restricted by a series of anti-Jewish decrees:
그때부터 유대인들의 고난이 시작된 거야. 일련의 유대인 탄압 법령들 때문에 우리의 자유는 심하게 제한됐어.
이제 본격적인 '금지의 시대'가 열렸어. 하지 말라는 건 왜 그렇게 많은지! 안네는 이제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포기해야 하는 서글픈 상황에 처했어.
Jews were required to wear a yellow star; Jews were required to turn in their bicycles;
유대인은 노란 별표를 가슴에 달아야 했고, 자전거도 나라에 반납해야 했어.
아니, 자전거까지 뺏어가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노란 별을 다는 건 사람들 사이에서 낙인을 찍는 거나 다름없었어. 멀리서도 '쟤 유대인이다!' 하고 알게 하려는 비열한 방법이었지.
Jews were forbidden to use street-cars; Jews were forbidden to ride in cars, even their own;
전차를 타는 것도 금지됐고, 자기 차를 포함해서 그 어떤 자동차도 탈 수 없었지.
이동의 자유를 완전히 뺏어버렸네. 이제 어디 가려면 무조건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 다녀야 했다는 거야. 사춘기 소녀 안네의 다리가 꽤나 고생했겠어.
Jews were required to do their shopping between 3 and 5 P.M.; Jews were required to frequent only Jewish-owned barbershops and beauty parlors;
쇼핑은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만 가능했고, 유대인이 운영하는 이발소나 미용실만 이용할 수 있었어.
쇼핑 시간까지 딱 정해주다니, 타임 세일도 아니고 정말 너무하다 그치? 다니는 곳마다 '유대인 전용'인지 아닌지 따져야 하는 안네의 피곤한 일상이 눈에 선해.
Jews were forbidden to be out on the streets between 8 P.M. and 6 A.M.;
저녁 8시부터 아침 6시 사이에는 아예 거리로 나가는 것조차 금지됐지.
완전 통행금지네. 해 지면 무조건 집에 들어가 있어야 했다니, 한창 밖에서 뛰놀고 싶은 안네에게는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이었을 거야. 밤공기 한번 쐬는 게 소원이 됐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