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rie borrowed freely from all religions. He was born Jewish, but became an agnostic when he was a teenager,
모리는 모든 종교에서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빌려왔어. 유대인으로 태어났지만, 십 대 때 불가지론자가 되었지,
모리 할아버지는 종교에 있어서 아주 오픈 마인드였어. 하나만 고집하는 꽉 막힌 스타일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좋은 건 쏙쏙 뽑아 쓰는 '종교계의 뷔페 마니아'였달까? 원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사춘기 시절을 거치면서 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대.
partly because of all that had happened to him as a child.
부분적으로는 어린 시절 그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 때문이었어.
모리 할아버지가 불가지론자가 된 건 그냥 중2병이 와서 그런 게 아니야.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는 너무 무뚝뚝하셨거든. 그런 아픈 기억들이 쌓이면서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던 거지.
He enjoyed some of the philosophies of Buddhism and Christianity, and he still felt at home, culturally, in Judaism.
그는 불교와 기독교의 철학 중 일부를 즐겼고,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유대교 안에서 편안함을 느꼈어.
불교의 명상이나 기독교의 사랑 같은 철학적인 가르침은 아주 좋아하셨대. 하지만 태어난 뿌리인 유대교의 문화적 관습이나 분위기 속에서는 여전히 '아, 여기가 내 고향이지' 하는 편안함을 느끼셨던 거야. 정신은 글로벌한데 입맛은 토종인 느낌이랄까?
He was a religious mutt, which made him even more open to the students he taught over the years.
그는 종교적으로 잡종이었는데, 그 덕분에 수년 동안 가르친 학생들에게 훨씬 더 개방적일 수 있었어.
모리 할아버지는 스스로를 '종교적 잡종(mutt)'이라고 불렀대. 이게 좀 웃기지만, 사실은 아주 멋진 말이야. 어느 한쪽만 옳다고 고집하지 않으니까, 자기한테 배우러 오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의 생각도 훨씬 더 넓은 마음으로 다 받아줄 수 있었던 거지.
And the things he was saying in his final months on earth seemed to transcend all religious differences.
그리고 지상에서의 마지막 몇 달 동안 그가 했던 말들은 모든 종교적 차이를 초월하는 것처럼 보였어.
모리 할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남긴 말들은 특정 종교의 틀에 갇히지 않고 보편적인 인간의 진리를 담고 있었다는 이야기야. 삶의 끝자락에 서니까 사소한 교리 싸움이나 형식 같은 건 아무 의미 없어진 거지. 마치 산 정상에 올라가면 밑에 있던 울타리들이 안 보이는 것처럼 말이야.
Death has a way of doing that. “The truth is, Mitch,” he said, “once you learn how to die, you learn how to live.”
죽음이란 게 원래 그런 식이지. "미치, 진실은 말이야," 그가 말했어. "일단 죽는 법을 배우고 나면, 사는 법도 배우게 된단다."
죽음이 닥치면 모든 게 단순해지고 본질만 남는다는 거야. 모리 교수님의 이 말은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명언이지. 죽음을 인정해야 비로소 오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는 깊은 뜻을 담고 있어. 교수님의 목소리가 왠지 더 단호하고 확신에 차 보여.
I nodded. “I’m going to say it again,” he said. “Once you learn how to die, you learn how to live.”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다시 한번 말해줄게," 그가 말했어. "일단 죽는 법을 배우고 나면, 사는 법을 배우게 된단다."
중요하니까 두 번 말씀하시는 거야. 이건 강조의 의미도 있지만, 제자인 미치가 이 말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게 아니라 가슴 깊이 새기길 바라는 스승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장면이지.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을 이겨내기 위한 교수님의 반복 학습 전략이랄까?
He smiled, and I realized what he was doing. He was making sure I absorbed this point, without embarrassing me by asking.
그는 미소를 지었고, 나는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어. 그는 내가 이 점을 확실히 이해하도록 하고 있었던 거야, 나에게 물어봐서 무안하게 만들지 않고 말이지.
"내 말 이해했니?"라고 대놓고 물어보면 숙제 검사받는 기분이라 당황스럽고 무안할 수 있잖아. 모리 교수님은 그런 세심한 배려까지 하면서 미치가 스스로 깨닫길 기다려주시는 거야. 역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느껴지는 참스승의 면모지!
It was part of what made him a good teacher. “Did you think much about death before you got sick?” I asked. “No.”
그게 바로 그를 좋은 선생님으로 만든 이유 중 하나였어. "아프기 전에도 죽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셨나요?" 내가 물었지. "아니."
제자 미치가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야. 모리 교수님이 학생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세심한지 감탄하면서, 드디어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툭 던져본 거지. 사실 우리도 건강할 땐 죽음 생각 잘 안 하잖아? 교수님도 솔직하게 대답하시네.
Morrie smiled. “I was like everyone else. I once told a friend of mine, in a moment of exuberance, ‘I’m gonna be the healthiest old man you ever met!’”
모리는 미소를 지었어. "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단다. 언젠가 친구한테 아주 기운이 넘치던 순간에 말한 적이 있어, '난 네가 만난 노인 중에 가장 건강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이야."
모리 교수님의 귀여운 허세 타임! 본인도 예전엔 무병장수할 줄 알았다고 고백하며 미소를 지으셔. 우리 할배, 기운 펄펄하던 시절엔 정말 자신만만하셨나 봐. 죽음을 앞둔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게 참 인간적이고 우스운 거지.
“How old were you?” “In my sixties.” “So you were optimistic.” “Why not? Like I said, no one really believes they’re going to die.”
"그때 연세가 어떻게 되셨는데요?" "육십 대였지." "그럼 아주 낙천적이셨네요." "왜 안 그러겠니? 내가 말했듯이, 아무도 자기가 죽을 거라고 진짜로 믿지는 않거든."
미치가 60대에도 그렇게 자신만만했냐며 놀리듯 묻자, 모리 교수님은 쿨하게 인정하셔. 사실 우리 모두 '죽음'이라는 단어는 알지만, 그게 '나의 일'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안 하잖아? 교수님은 그 보편적인 인간의 착각을 콕 집어 말씀하시네.
“But everyone knows someone who has died,” I said. “Why is it so hard to think about dying?”
"하지만 누구나 죽은 사람을 한 명쯤은 알고 있잖아요," 내가 말했어.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미치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네. 주변에서 죽음을 수없이 목격하면서도, 왜 우리는 정작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눈을 감아버리는 걸까? 이 질문은 모리 교수님이 왜 '죽는 법을 배워야 사는 법을 배운다'고 하셨는지 그 이유를 찾아가는 열쇠가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