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ittle each morning, a few tears, and that’s all.”
“매일 아침 조금씩, 눈물 몇 방울, 그러면 그게 다라네.”
교수님이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비결을 말씀하시는 장면이야. 슬픔을 아예 참는 게 아니라, 아침에 딱 정해진 '할당량'만큼만 슬퍼하고 털어버리신다는 거지. 쿨함의 끝판왕 아니니?
I thought about all the people I knew who spent many of their waking hours feeling sorry for themselves.
나는 깨어 있는 시간 중 많은 부분을 자기 연민에 빠져 보내는, 내가 아는 그 모든 사람들을 떠올렸어.
교수님의 절제된 모습을 보니까 미치 주변의 멀쩡한 사람들이 생각난 거지. 다들 사지 멀쩡하면서도 하루 종일 '난 왜 이럴까' 하며 우울해하잖아? 미치 스스로를 포함해서 말이야.
How useful it would be to put a daily limit on self-pity.
자기 연민에 일일 제한을 두는 게 얼마나 유용할까 싶더라고.
교수님의 아침 슬픔 할당제를 보면서 미치가 깨달음을 얻었어. '아, 우리도 슬픔에 데이터를 제한하듯이 한도를 정해두면 인생이 훨씬 살만하겠는데?' 하는 아이디어가 번뜩인 거지.
Just a few tearful minutes, then on with the day. And if Morrie could do it, with such a horrible disease...
그저 몇 분간 눈물 좀 흘리고 나서, 다시 하루를 살아가는 거지. 그리고 모리 교수님이 그런 끔찍한 병을 앓으면서도 해낼 수 있다면...
미치는 이제 교수님의 철학을 완전히 이해했어. 죽어가는 사람도 하루에 몇 분만 울고 마는데, 멀쩡한 우리가 하루 종일 우울할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은 거야. 교수님의 강한 정신력에 리스펙을 보내는 장면이지.
“It’s only horrible if you see it that way,” Morrie said.
“네가 그런 식으로만 본다면야 오직 끔찍할 뿐이지,” 모리 교수님이 말씀하셨어.
상황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지옥이 될 수도,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는 교수님의 초월적인 마인드셋이야. 역시 인생 2회차 같은 포스가 느껴지지 않니?
“It’s horrible to watch my body slowly wilt away to nothing.”
“내 몸이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천천히 시들어가는 걸 지켜보는 건 끔찍한 일이야.”
솔직히 몸이 망가지는 게 안 슬플 리가 없잖아. 교수님도 인간인데 말이야. 꽃이 시드는 것처럼 자기 몸이 사라져가는 괴로움을 가감 없이 털어놓고 계셔.
“But it’s also wonderful because of all the time I get to say good-bye.” He smiled. “Not everyone is so lucky.”
“하지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는 건 또한 멋진 일이라네.” 그가 미소 지었어.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운이 좋은 건 아니거든.”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는 게 아니라, 죽음을 준비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인사할 시간이 있다는 걸 '행운'이라고 부르시는 거야. 이 긍정 회로, 진짜 본받고 싶지 않니?
I studied him in his chair, unable to stand, to wash, to pull on his pants. Lucky? Did he really say lucky?
나는 혼자 일어서지도, 씻지도, 바지를 입지도 못한 채 의자에 앉아 있는 그를 가만히 관찰했어. 행운이라고? 그가 정말 행운이라고 말한 건가?
미치 입장에서는 멘붕이지. 혼자 화장실도 못 가고 바지도 못 입는 상황인데 '운이 좋다'니? 교수님의 해탈 경지에 미치의 상식이 탈탈 털리고 있는 장면이야.
During a break, when Morrie had to use the bathroom, I leafed through the Boston newspaper that sat near his chair.
쉬는 시간에, 모리 교수님이 화장실에 가야 했을 때, 나는 교수님 의자 근처에 놓인 보스턴 신문을 대충 훑어봤어.
교수님이 화장실 가시는 동안 잠깐 짬이 나서 신문을 본 거야. 모리 교수님과의 따뜻한 대화와는 대조되는, 차갑고 삭막한 세상 소식들이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지.
There was a story about a small timber town where two teenage girls tortured and killed a seventy-three-year-old man
어느 작은 목재 마을에서 십 대 소녀 두 명이 일흔세 살 노인을 고문하고 살해했다는 기사가 있었어.
신문을 펼치자마자 눈에 들어온 뉴스가 너무 충격적이야. 평화로운 모리 교수님의 방과 세상의 잔혹함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순간이지.
who had befriended them, then threw a party in his trailer home and showed off the corpse.
그 노인은 소녀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줬는데, 소녀들은 노인의 트레일러 집에서 파티를 열고 시신을 자랑하기까지 했대.
친절을 베푼 결과가 이렇게 끔찍하다니, 정말 머리가 멍해지는 소식이지. 인간의 악함은 어디까지인지 의문이 들 정도야.
There was another story, about the upcoming trial of a straight man who killed a gay man
또 다른 기사도 있었는데, 게이 남성을 살해한 한 이성애자 남성의 곧 열릴 재판에 관한 거였어.
세상은 증오와 편견으로 인한 범죄로 가득 차 있어. 모리 교수님이 강조하시는 '사랑'과 '이해'가 이 세상에 얼마나 필요한지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