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nt to tell him what to look out for, what mistakes to avoid. I want to tell him to be more open, to ignore the lure of advertised values,
그 친구에게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어떤 실수를 피해야 할지 말해주고 싶어. 마음을 더 열라고, 광고에서 떠들어대는 가치들의 유혹을 무시하라고 말해주고 싶어.
성공만이 정답인 줄 알고 앞만 보고 달렸던 '과거의 미치'에게 현재의 미치가 건네는 뼈 때리는 조언이야. 타임머신 타고 돌아가서 뒷덜미라도 잡고 싶은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니?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거 다 믿지 말고 진짜 소중한 걸 보라는 형의 진심 어린 충고라고 생각하면 돼.
to pay attention when your loved ones are speaking, as if it were the last time you might hear them.
사랑하는 사람들이 말할 때, 마치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귀를 기울이라고 말이야.
이거 진짜 가슴 찌릿한 문장이야. 우리가 평소에 부모님이나 친구 말 들을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잖아? 근데 그게 마지막이라면? 모리 선생님을 떠나보내기 직전인 미치가 뼈저리게 느낀 '경청'의 중요성이지. 눈물 콧물 쏙 빼는 포인트니까 진지하게 음미해봐.
Mostly I want to tell that person to get on an airplane and visit a gentle old man in West Newton, Massachusetts,
무엇보다도 그 사람에게 당장 비행기를 타고 매사추세츠주 웨스트 뉴턴에 계신 인자한 노교수님을 찾아가라고 말하고 싶어.
미치가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게 뭔지 알아? 바로 모리 선생님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도 한참 뒤에야 찾아간 거야. 그래서 과거의 자신을 비행기에 억지로라도 태워서 당장 보낼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한탄하는 장면이지. 웨스트 뉴턴은 선생님의 안식처이자 미치의 인생이 바뀐 성지 같은 곳이야.
sooner rather than later, before that old man gets sick and loses his ability to dance.
더 늦기 전에, 그 노교수님이 병석에 누워 춤출 기운조차 잃어버리기 전에 말이야.
모리 선생님 하면 떠오르는 게 뭐야? 바로 자유롭게 춤추던 모습이잖아. 근데 루게릭병 때문에 그 소중한 능력을 잃어버리셨지. 미치는 선생님이 아직 춤출 수 있을 때, 그 생기 넘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일찍 보지 못한 게 평생의 한으로 남았나 봐. '나중에'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일 수도 있어.
I know I cannot do this. None of us can undo what we’ve done, or relive a life already recorded.
나도 알아, 이럴 순 없다는 걸. 우리 중 누구도 이미 저지른 일을 되돌리거나 이미 기록된 삶을 다시 살 순 없지.
미치가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슝 날아가서 예전의 자신을 뜯어말리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냉혹한 법이지. 과거는 이미 편집 불가능한 '확정된 녹화본' 같은 거라 수정 버튼이 없다는 걸 깨닫는 씁쓸한 순간이야.
But if Professor Morris Schwartz taught me anything at all, it was this: there is no such thing as “too late” in life.
하지만 모리스 슈워츠 교수님이 내게 가르쳐준 게 단 하나라도 있다면 바로 이거야. 인생에 '너무 늦은' 건 없다는 사실.
과거를 못 바꿔서 우울해하던 미치가 갑자기 번뜩 정신을 차리는 장면이야! 모리 쌤이 전수해준 비장의 필살기 같은 교훈이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게 아니라, 그때부터가 시작이라는 모리 쌤의 무한 긍정 파워!
He was changing until the day he said good-bye. Not long after Morrie’s death, I reached my brother in Spain.
그분은 작별 인사를 하는 그날까지도 계속 변하고 계셨어. 모리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안 지나서, 스페인에 있는 동생이랑 연락이 닿았지.
모리 쌤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성장캐'였다는 놀라운 사실! 그 에너지를 받아서 미치도 드디어 큰 결심을 해. 암 투병 중이라 연락을 끊고 살던 동생에게 먼저 용기 내서 전화를 건 거야. 스페인까지 마음이 닿았나 봐.
We had a long talk. I told him I respected his distance,
우린 긴 대화를 나눴어. 난 동생의 거리두기를 존중한다고 말해줬지.
그동안 서로 서먹서먹했던 형제의 해빙기야. 미치가 '야 너 왜 연락 안 했어!'라고 따지는 게 아니라, 동생이 혼자 있고 싶어 했던 마음(distance)을 먼저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역시 모리 쌤 제자다워!
and that all I wanted was to be in touch—in the present, not just the past—to hold him in my life as much as he could let me.
그리고 내가 원하는 건 그저 연락하고 지내는 것뿐이라고, 과거가 아닌 현재 속에서, 동생이 허락하는 만큼 내 삶 속에 동생을 두고 싶다고 말이야.
미치의 진심 펀치 작렬! 옛날 추억이나 들먹이며 과거에 갇혀 지내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present)을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절절한 고백이야. 동생이 부담스럽지 않게 '네가 허락하는 만큼만'이라며 선을 지키는 모습이 진짜 감동적이지 않니?
“You’re my only brother,” I said. “I don’t want to lose you. I love you.” I had never said such a thing to him before.
“넌 내 하나뿐인 동생이야,” 내가 말했어. “널 잃고 싶지 않아. 사랑해.” 난 그전까지 동생에게 그런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거든.
드디어 미치가 동생한테 진심 펀치를 날렸어! 그동안 서먹했던 세월을 다 날려버릴 만큼 묵직한 고백이지. 평소에 낯간지러워서 절대 안 하던 소리를 한 거니까, 미치 입장에서는 거의 에베레스트 등반급의 용기를 낸 거야. 분위기가 아주 촉촉하다 못해 비가 내릴 지경이야.
A few days later, I received a message on my fax machine.
며칠 후, 내 팩스기로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어.
미치의 진심이 드디어 스페인까지 닿았나 봐! 며칠 동안 얼마나 목 빠지게 기다렸겠어. 요즘처럼 카톡으로 바로 답장 오는 시대가 아니라 팩스로 답장이 왔다는 게 포인트야. 그 지이잉~ 소리 나면서 종이 나오는 그 떨림, 상상 가니?
It was typed in the sprawling, poorly punctuated, all-cap-letters fashion that always characterized my brother’s words.
그건 글자들이 제멋대로 흩어지고 구두점도 엉망인 데다, 전부 대문자로만 채워진 전형적인 내 동생 스타일의 글이었어.
메시지를 딱 보자마자 '아, 이거 내 동생 맞네' 싶은 거지. 글씨체나 타이핑 습관만 봐도 누가 썼는지 알 수 있는 법이잖아? 동생의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아주 개성 넘치는(?) 작성 방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