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rie would walk that final bridge between life and death, and narrate the trip.
모리 교수님은 삶과 죽음 사이의 그 마지막 다리를 건너며, 그 여정을 들려주기로 하셨어.
죽음을 앞두고 공포에 떨기보다, 마치 낯선 곳을 여행하는 여행가처럼 그 과정을 기록하고 들려주겠다고 결심하신 거야. 죽음을 '마지막 프로젝트'로 승화시킨 교수님의 멋진 태도가 돋보이는 대목이지.
The fall semester passed quickly. The pills increased. Therapy became a regular routine.
가을 학기는 빠르게 지나갔어. 알약 개수는 늘어났고, 물리치료는 규칙적인 일상이 되었지.
시간이 흐르면서 병세가 점점 악화되는 모습을 아주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어. 문장들이 짧게 뚝뚝 끊기는 게 마치 교수님의 남은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네.
Nurses came to his house to work with Morrie's withering legs, to keep the muscles active,
간호사들이 그의 집으로 와서 모리 교수님의 야위어가는 다리를 주물러줬어, 근육이 살아있게 하려고 말이야.
병 때문에 다리 근육이 말라가는 걸 막기 위해 간호사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야. 근육이 굳지 않게 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느껴지는 장면이지.
bending them back and forth as if pumping water from a well.
마치 우물에서 물을 긷는 것처럼 다리를 앞뒤로 굽혔다 폈다 하면서 말이야.
간호사가 교수님의 다리를 운동시키는 모습을 묘사했는데, 우물 펌프질에 비유한 게 정말 기막히지 않아? 단순한 동작이지만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그 느낌이 확 와닿아.
Massage specialists came by once a week to try to soothe the constant, heavy stiffness he felt.
마사지 전문가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들러서 그가 느끼는 끊임없고 묵직한 뻣뻣함을 달래주려고 애썼어.
루게릭병 때문에 몸이 점점 굳어가는 모리 교수님을 위해 전문가들까지 출동한 상황이야. 근육이 돌덩이처럼 굳어버리니 얼마나 답답하셨겠어? 전문가의 손길로라도 그 뻐근함을 좀 털어내 보고 싶으셨던 거지.
He met with meditation teachers, and closed his eyes and narrowed his thoughts
그는 명상 선생님들을 만났고, 눈을 감고 생각을 좁혔지.
이제 몸뿐만 아니라 정신 수양에도 돌입하셨어! 멘탈 관리를 위해 명상을 선택하신 건데, 온갖 잡념을 다 버리고 오로지 한 점에만 집중하려는 교수님의 포스가 느껴지지 않니?
until his world shrunk down to a single breath, in and out, in and out.
그의 세상이 들이마시고 내뱉는, 단 한 번의 호흡으로 줄어들 때까지 말이야.
명상의 끝판왕 단계에 도달하신 거야. 주변의 고통이나 슬픔은 다 사라지고, 오직 '나의 숨결' 하나만 남은 평온한 상태! 그 짧은 호흡 속에 온 우주를 담으신 셈이지.
One day, using his cane, he stepped onto the curb and fell over into the street. The cane was exchanged for a walker.
어느 날, 지팡이를 짚고 연석에 올라서려다 길가로 넘어지셨어. 지팡이는 보행 보조기로 바뀌었지.
아... 결국 지팡이 하나로는 버틸 수 없는 지점이 온 거야. 길에서 넘어진 건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지. 이제는 네 바퀴 달린 보행 보조기(워커)에 의지해야만 하는 단계가 됐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
As his body weakened, the back and forth to the bathroom became too exhausting, so Morrie began to urinate into a large beaker.
몸이 약해지면서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는 게 너무 힘들어졌고, 그래서 모리 교수님은 커다란 비커에 소변을 보기 시작했어.
병세가 깊어지니까 이제 화장실 가는 그 짧은 거리도 에베레스트 등반급 난이도가 된 거야. 결국 교수님은 자존심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비커라는 실용적인 선택을 하신 거지. 인생의 쓴맛을 소변 줄기로 승화시키시는 중이랄까?
He had to support himself as he did this, meaning someone had to hold the beaker while Morrie filled it.
볼일을 보는 동안 몸을 지탱해야 했거든. 그 말은 즉, 모리 교수님이 비커를 채우는 동안 누군가는 그걸 들고 있어 줘야 했다는 뜻이지.
이게 참 난감한 상황이지. 한 손으로는 몸을 지탱해야 하니까 정작 비커를 들 손이 없는 거야. 교수님의 남은 품위마저 내려놓아야 하는 이 서글픈 협동 작업(?)을 아주 담담하게 설명하고 있어.
Most of us would be embarrassed by all this, especially at Morrie's age. But Morrie was not like most of us.
우리 대부분은 이런 상황이 오면 창피해하겠지, 특히 모리 교수님 같은 연세라면 더더욱. 하지만 모리 교수님은 우리랑은 좀 다른 분이었어.
보통 사람 같으면 '차라리 날 죽여라!' 할 상황인데, 모리 교수님은 멘탈 갑이셔. 부끄러움보다 삶의 본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비범함을 강조하는 대목이야.
When some of his close colleagues would visit, he would say to them,
가까운 동료들이 방문할 때면, 교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하셨어.
친한 친구들이 병문안 왔을 때의 장면이야. 보통은 위로를 건네러 온 동료들에게 교수님이 먼저 선수를 치시는 거지. 분위기가 무거워질 틈을 안 주시는 센스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