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ng Southerners, it was a source of shame to some members of the family that we had no recorded ancestors on either side of the Battle of Hastings.
남부 사람이다 보니, 헤이스팅스 전투의 어느 쪽 진영에도 기록된 조상이 없다는 게 우리 가족 중 몇몇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었어.
미국 남부 사람들은 가문의 역사와 전통에 목숨 거는 경향이 있어. 그런데 1066년의 그 유명한 전투에 우리 조상이 1도 안 보였다니! 족보 부심 있는 친척들 입장에선 자존심 좀 상할 만하지.
All we had was Simon Finch, a fur-trapping apothecary from Cornwall whose piety was exceeded only by his stinginess.
우리가 가진 조상이라곤 콘월 출신의 모피 사냥꾼이자 약사인 사이먼 핀치뿐이었는데, 이 양반의 신앙심은 그의 지독한 구두쇠 기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
우리 가문의 유일한 조상이자 전설적인 인물, 사이먼 핀치를 소개하고 있어. 근데 이 할아버지, 신앙심이 깊긴 한데 돈 아끼는 마음은 그보다 더 깊었대. 종교와 돈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캐릭터라니, 벌써부터 범상치 않지?
In England, Simon was irritated by the persecution of those who called themselves Methodists at the hands of their more liberal brethren,
영국에 있을 때 사이먼은 스스로를 감리교도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그들보다 더 자유로운 형제들의 손에 박해받는 것을 보고 아주 질색을 했어.
사이먼이 왜 정든 고향 영국을 등지고 짐을 쌌는지 알려주는 부분이야. 종교적으로 좀 빡빡하게 살고 싶은데 주변에서 자꾸 괴롭히니까 스트레스가 폭발하기 직전이었던 거지.
and as Simon called himself a Methodist, he worked his way across the Atlantic to Philadelphia,
게다가 사이먼 본인도 감리교도라고 자처했기에, 그는 대서양을 건너 필라델피아까지 꾸역꾸역 길을 개척해 나갔지.
사이먼 할아버지, 남 박해받는 거 보고 화내다가 '나도 감리교도다!'라고 선언해 버렸어. 그리곤 바로 실행에 옮겨서 대서양을 건너버리는 이 무시무시한 행동력! 역시 돈 아끼는 집념만큼이나 대단하지?
thence to Jamaica, thence to Mobile, and up the Saint Stephens.
거기서 자메이카로, 다시 거기서 모빌로, 그리고 세인트스티븐스 강을 따라 쭉 올라갔지.
할아버지의 방랑벽(?)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어. 필라델피아에 도착해서도 만족 못 하고 자메이카, 모빌을 거쳐 강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 정도면 거의 '인간 내비게이션' 수준인데?
Mindful of John Wesley’s strictures on the use of many words in buying and selling, Simon made a pile practicing medicine,
물건을 사고팔 때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존 웨슬리의 훈계를 명심하면서, 사이먼은 의사 노릇을 하며 돈을 무더기로 벌어들였어.
우리 조상님 사이먼은 아주 독실한 척은 다 하지만, 사실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 양반이었어. 감리교 창시자의 말씀을 지킨답시고 입은 꾹 다물면서도 손으로는 돈을 싹 쓸어 담고 있었던 거지. 신앙과 통장 잔고 사이에서 아주 줄타기를 잘하는 영리한 캐릭터야.
but in this pursuit he was unhappy lest he be tempted into doing what he knew was not for the glory of God,
하지만 그는 이런 돈벌이를 하면서도, 혹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게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짓을 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불행해했어.
사이먼 할아버지는 돈은 좋은데, 천국 못 갈까 봐 걱정하는 아주 피곤한 스타일이었어. 의사 일로 돈을 벌면서도 '아, 이러다 내가 사치 부리고 죄짓는 거 아냐?' 하고 혼자 머릿속으로 번뇌에 빠진 상황이지. 한마디로 부유한 자의 배부른 고민이랄까?
as the putting on of gold and costly apparel. So Simon, having forgotten his teacher’s dictum on the possession of human chattels,
금장식을 몸에 걸치거나 비싼 옷을 입는 것 같은 일들 말이야. 그래서 사이먼은 인간을 재산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스승의 금언은 홀랑 까먹어버리고,
이 할아버지 진짜 웃기지 않아? 겉멋 부리고 비싼 옷 입는 건 죄라고 생각해서 벌벌 떨면서, 정작 사람을 물건처럼 부리는 노예 제도에 대해서는 '응? 그게 뭐야? 먹는 거야?' 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아주 깔끔하게 잊어버려. 자기 편한 대로 믿는 '선택적 신앙심'의 끝판왕이야.
bought three slaves and with their aid established a homestead on the banks of the Alabama River some forty miles above Saint Stephens.
노예 세 명을 사들여 그들의 도움으로 세인트스티븐스에서 40마일쯤 떨어진 앨라배마 강가에 농장을 세웠어.
비싼 옷 입는 건 무섭지만 노예 사는 건 아무렇지 않았던 사이먼 할아버지는 결국 인건비(?)를 아껴서 강가에 멋진 농장을 차려. 이게 바로 핀치 가문의 본거지가 되는 '핀치 랜딩'의 시작이야. 아주 종교적이고도 세속적인 방법으로 가문의 기틀을 잡은 셈이지.
He returned to Saint Stephens only once, to find a wife, and with her established a line that ran high to daughters.
그는 아내를 찾으러 딱 한 번 세인트스티븐스로 돌아갔고, 그녀와 함께 딸들이 아주 많이 태어나는 가계를 세웠어.
사이먼 할아버지는 농장 세우고 나서 엉덩이가 아주 무거워졌나 봐. 딱 한 번 마실 나간 게 결혼하려고 나간 거래.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대손손 딸 부잣집이 되어버렸네? 이쯤 되면 아들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었나 봐.
Simon lived to an impressive age and died rich. It was customary for the men in the family to remain on Simon’s homestead,
사이먼은 엄청나게 장수했고 부자로 죽었어. 집안 남자들이 사이먼의 농장에 머무는 게 관례였지,
지독하게 아끼고 건강 관리도 철저히 했나 봐. 아주 오래 살고 돈도 꽉 쥐고 세상을 떴대. 게다가 아들들에게는 '여기서 나가지 말고 농장이나 지켜라'라는 무언의 압박 같은 전통까지 남겼어.
Finch’s Landing, and make their living from cotton. The place was self-sufficient: modest in comparison with the empires around it,
핀치 랜딩 말이야, 거기서 면화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렸지. 그곳은 자급자족이 가능했어. 주변의 거대한 영지들에 비하면 소박했지만 말이야.
이 농장 이름이 '핀치 랜딩'이야. 면화로 돈 벌면서 웬만한 건 다 직접 해결하는 '나는 자연인이다' 급의 자급자족을 보여줬어. 주변에 으리으리한 농장들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작아 보였지만, 알짜배기였던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