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gnizing full well the change in tone—fear, hesitancy—that always preceded the subject matter.
그 주제가 나오기 전에는 언제나 어조의 변화—두려움과 망설임—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리너의 통찰력 보소! 남들이 자기 과거 얘기를 꺼내기 직전에 짓는 표정과 말투의 매뉴얼을 이미 머릿속에 다 넣어뒀어. 두려움(fear)과 망설임(hesitancy)이 섞인 그 미묘한 분위기 변화를 감지하는 에리너... 사실 이건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관찰당해온 에리너만의 슬픈 방어 기제이기도 해. 이 문장을 읽으면 에리너가 얼마나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인지 느껴지지?
“You’re still of the view that you don’t want to know anything else about the incident, or about your mother, I understand?”
“당신은 그 사건이나 어머니에 대해 더는 알고 싶지 않다는 견해를 여전히 유지하고 계시는군요, 제 말이 맞나요?”
준 멀런이 드디어 금기어인 'the incident(그 사건)'와 'mother'를 꺼냈어! 근데 질문이 참... 'You're of the view(당신은 ~라는 견해군요)'라니, 무슨 토론회 하니? 준도 이 얘기가 얼마나 민감한지 아니까 최대한 조심스럽고 공식적인 말투를 골라 쓰고 있어. 에리너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이 순간, 방 안의 온도가 뚝 떨어지는 것 같아.
No smiling this time. “That’s right,” I said.
이번에는 미소가 없었다. “맞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에리너의 이 짧고 굵은 대답, 정말 소름 돋지 않아? 아까의 가식적인 미소는 싹 걷어치우고 정색 모드로 들어갔어. 'That's right' 한마디로 모든 대화를 종료시키려는 저 기백! 에리너에겐 엄마와 그 사건은 '절대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인 거야. 준 멀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게 신상에 좋을걸?
“There’s no need—I speak to her once a week, on a Wednesday evening, regular as clockwork.”
“그럴 필요 없습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 저녁마다 시계태엽처럼 정확하게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니까요.”
에리너의 저 단호함 좀 봐. 엄마랑 매주 수요일마다 통화한다고 아주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어. 'regular as clockwork'라는 표현에서 에리너의 강박적인 루틴 사랑이 느껴지지? 준 멀런은 기겁할 노릇이겠지만, 에리너에겐 이게 아주 정상적이고 완벽한 시스템인 거야.
“Really? After all this time, that’s still happening? Interesting... Are you keen to... maintain this contact?”
“정말인가요? 그 모든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니요? 흥미롭군요... 이 연락을... 계속 유지하고 싶으신 건가요?”
준 멀런의 동공 지진이 느껴지는 것 같지? 'Interesting'이라고 말은 하지만 속으론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야?'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에리너의 과거를 아는 입장에선 그 '연락'이 절대 정상적일 리 없으니까. 준이 조심스럽게 'Are you keen to...?(정말 그러고 싶니...?)'라고 묻는 저 망설임 좀 봐.
“Why wouldn’t I be?” I said, incredulous. Where on earth does the Social Work Department find these people?
“안 될 이유가 있나요?”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도대체 사회복지국은 이런 사람들을 어디서 찾아내는 걸까?
에리너의 역공! 오히려 준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있어. 자기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을 의아해하는 준을 보며 '이런 함량 미달 직원은 어디서 데려온 거야?'라고 속으로 비웃는 중이지. 에리너의 저 당당한 사회성 결여는 가끔 경이로울 정도야.
She deliberately allowed the silence to linger, and, although I recognized the technique, I could not stop myself from filling it, eventually.
그녀는 의도적으로 침묵이 흐르도록 내버려 두었고, 나는 그것이 하나의 기술임을 인지했음에도 결국 그 공백을 채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준 멀런이 상담의 기술인 '침묵 요법'을 시전했어. 에리너는 똑똑해서 이게 자기를 말하게 하려는 수작인 걸 다 알면서도, 그 어색함을 못 견디고 결국 입을 열어버려. 아는 길도 함정에 빠지는 저 인간적인 면모... 에리너도 결국 사람이라는 증거겠지?
“I think Mummy would like it if I tried to find out more about... the incident... but I’ve no intention of doing so.”
“엄마는 내가... 그 사건에 대해 더 알아보려 한다면 좋아하시겠지만... 나는 전혀 그럴 의도가 없습니다.”
드디어 에리너의 속마음이 조금 나왔어. 엄마는 에리너가 과거를 들쑤시길 바라는 눈치지만, 에리너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지. 'the incident'라는 단어를 뱉을 때 에리너의 마음속에 어떤 폭풍이 몰아치고 있을지 감히 상상도 안 가. 'no intention'이라니, 의지만큼은 철옹성 같네.
“No,” she said, nodding. “Well, how much you want to know about what happened is entirely up to you, isn’t it?
“아니에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알고 싶은지는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린 일이죠, 안 그런가요?
준 멀런이 에리너의 거부 반응을 보고 한 발 물러섰어. 사회복지사답게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entirely up to you)'이라며 존중해주는 척하는 거지. 사실은 더 묻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겠지만, 지금은 에리너의 철벽을 존중해주는 게 상담의 기본이니까.
The courts were very clear, back then, that anything like that was to be entirely at your discretion?”
당시 법원은 그런 모든 사항이 전적으로 당신의 재량에 달려 있다는 점을 매우 분명히 했었죠?
준 멀런이 에리너에게 과거 기록을 볼지 말지에 대한 권리가 법적으로 에리너에게 있다는 걸 상기시켜주고 있어. 에리너의 트라우마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배려 같지만, 한편으론 법적인 책임을 회피하려는 공무원 특유의 화법 같기도 하지? 'discretion(재량)'이라는 단어 하나로 선택의 짐을 에리너에게 슥 넘기는 느낌이야.
“That’s correct,” I said, “that’s exactly what they said.” She looked closely at me, as so many people had done before,
“맞습니다.” 내가 말했다. “정확히 그렇게 판결했지요.” 그녀는 이전의 수많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나를 유심히 관찰했다.
에리너는 법원의 판결을 마치 남의 일 말하듯 담담하게 긍정해. 하지만 준 멀런의 시선이 심상치 않아. 에리너는 이미 익숙하다는 듯 'so many people had done before'라고 덧붙이지. 준도 결국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자기를 구경하는 구경꾼 중 하나일 뿐이라는 냉소가 섞여 있어.
scrutinizing my face for any traces of Mummy,
내 얼굴에서 엄마의 흔적을 찾으려는 듯 꼼꼼히 살피며,
에리너를 보는 사람들은 항상 그녀의 얼굴에서 그 '악녀'의 흔적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 'scrutinizing(세밀하게 조사하다)'이라는 단어에서 준의 무례한 호기심이 느껴지지 않니? 에리너를 인격체가 아니라 수수께끼나 박물관 유물처럼 대하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