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hey loved to wear those badges on their blazers the next day!
그다음 날, 그들이 교복 상의에 그 훈장 같은 배지들을 다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던지!
운동회 상장이나 배지를 가슴에 달고 으스대는 친구들을 보며 에리너는 '참 애쓴다'는 표정을 짓고 있어. 'How they loved'라는 감탄문 형식을 써서 그들의 유치한 열광을 아주 지적으로 비웃고 있지.
As if a silver in the egg-and-spoon race was some sort of compensation for not understanding how to use an apostrophe.
마치 아포스트로피 사용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라도 되는 양, 숟가락에 달걀 얹고 달리기 경주에서 은메달을 따는 식이었다.
에리너의 독설이 폭발했어! 숟가락에 계란 얹고 뛰는 유치한 경주에서 은메달 따는 게, 쉼표 하나 제대로 못 찍는 무식함의 보상(compensation)이 되느냐고 묻는 거야. 공부 못하는 애들이 몸 쓰는 걸로 자존감 채우는 게 가소롭다는 거지. 에리너, 정말 팩트 살인마야!
At secondary school, PE was simply unfathomable. We had to wear special clothes and then run endlessly around a field,
중등학교 시절, 체육 수업은 그저 이해 불가능한 것이었다. 우리는 특수한 옷을 입고 운동장 주변을 끝도 없이 달려야 했다.
중학생 에리너에게 체육(PE)은 '이해 불가능(unfathomable)'한 미스터리였대. 이상한 옷(체육복)을 껴입고 뺑뺑이 도는 게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거지. 에리너에게 운동장이란 그저 의미 없는 노동의 현장이었나 봐.
occasionally being told to hold a metal tube and pass it to someone else.
가끔은 금속 원통을 들고 있다가 그것을 타인에게 건네주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이어달리기 바통을 '금속 원통(metal tube)'이라고 부르는 에리너 좀 봐! 정말 감정 배제된 물리적 묘사지? 남에게 바통 터치하는 걸 '타인에게 건네줌'이라고 분석하는 시선이 너무 웃겨. 에리너에게 협동심이란 그저 이상한 명령 수행일 뿐이야.
If we weren’t running, we were jumping, into a sandpit or over a small bar on legs.
우리가 달리고 있지 않을 때는 점프를 하고 있었다. 모래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거나 다리가 달린 작은 가로대 위를 넘으면서 말이다.
에리너의 눈에 비친 멀리뛰기와 높이뛰기 묘사야. '다리가 달린 가로대(bar on legs)'라니, 기구 이름조차 부르기 싫어하는 에리너의 삐딱한 시선이 느껴져. 체육 시간의 모든 활동을 아주 낯설고 기이한 물리적 현상으로만 보고 있어.
There was a special way of doing this; you couldn’t simply run and jump, you had to do some strange sort of hop and skip first.
이것을 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었다. 단순히 달려가서 점프하면 되는 게 아니라, 먼저 어떤 이상한 종류의 깡충거림과 건너뛰기를 해야만 했다.
세단뛰기를 묘사하는 것 같아. 도움닫기 과정을 '이상한 깡충거림'이라고 분석하는 에리너의 머릿속은 정말 논리 그 자체야. 효율성을 중시하는 그녀에겐 이 복잡한 동작이 아주 비논리적이고 기괴해 보였을 거야.
I asked why, but none of the PE teachers (most of whom, as far as I could ascertain, would struggle to tell you the time) could furnish me with an answer.
나는 이유를 물었지만, 체육 교사들 중 그 누구도(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들 대부분은 현재 시간을 말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내게 답을 해주지 못했다.
에리너의 지적 폭격이 또 시작됐어! 체육 선생님들이 시계도 못 볼 정도로 지능이 낮아 보였다고 아주 잔인하게(?) 표현하고 있지. 'Furnish with an answer'라니, 질문 하나 하는 데에도 단어 수준이 정말 품격 넘쳐서 더 웃겨.
All of these seemed strange activities to impose on young people with no interest in them,
이 모든 것들은 그것에 관심이 없는 청소년들에게 강요하기에는 이상한 활동들처럼 보였다.
에리너는 학교 교육 과정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 하기 싫은 애들한테 억지로 시키는 건 시간 낭비라는 거지. 'Impose(강요하다)'라는 단어를 써서 국가적 폭력(?)에 가까운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어.
and indeed I’m certain that they merely served to alienate the majority of us from physical activity for life.
참으로 나는 그것들이 우리 대다수를 평생 동안 신체 활동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역할만을 했다고 확신한다.
체육 수업의 부작용을 아주 사회학적으로 분석했네! 억지로 시키니까 오히려 평생 운동을 싫어하게 된다는 거야. 에리너의 'Merely served to(그저 ~하는 역할만 했다)'라는 냉소적인 평가는 정말 정곡을 찌르는 것 같아.
Fortunately, I am naturally lithe and elegant of limb, and I enjoy walking, so I have always kept myself in a reasonable state of physical fitness.
다행히도 나는 태생적으로 유연하고 팔다리가 우아하며 걷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적절한 수준의 체력을 유지해 왔다.
에리너의 깨알 같은 자기 자랑 타임! 운동회는 한심해하면서 자기 몸은 '유연하고 우아하다(lithe and elegant)'고 칭찬하네. 걷기만으로 '적절한 체력(reasonable fitness)'을 유지한다는 에리너의 근거 있는(?) 자부심이 돋보여.
Mummy has a particular loathing for the overweight (“Greedy, lazy beast,” she’d hiss, if one waddled past us in the street)
엄마는 과체중인 사람들에 대해 특별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탐욕스럽고 게으른 짐승 같으니,” 거리에서 누군가 뒤뚱거리며 우리를 지나치면 엄마는 그렇게 쉿 소리를 내며 속삭이곤 했다).
에리너의 엄마는 정말 자비라곤 1도 없는 분이야. 통통한 사람이 지나가기만 해도 '게으른 짐승'이라고 독설을 날리셨대. 엄마의 이 살벌한 취향 때문에 에리너가 외모나 자기 관리에 대해 엄청난 강박을 갖게 된 원인이 짐작 가지? 길 가다 마주치면 눈 깔고 지나가야 할 보스 몹 레벨이야.
and I may perhaps have internalized this view to some extent.
그리고 아마도 나 또한 이러한 관점을 어느 정도 내면화했을지도 모른다.
이게 무서운 거야. 엄마가 하도 옆에서 독설을 퍼부으니까, 에리너도 모르게 그 생각에 물들어버린 거지. 'Internalized(내면화하다)'라는 단어를 써서 자기 자신을 아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있어.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에리너의 냉소적인 시선은 엄마 유전자가 확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