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sang of nature, my handsome Orpheus. His voice. His voice!
그는 자연을 노래했다, 나의 잘생긴 오르페우스여. 그의 목소리. 그의 목소리라니!
에리너가 드디어 신화까지 끌어들였어. 'Orpheus(오르페우스)'는 리라 연주로 짐승도 감동시킨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이지. 짝사랑 상대를 전설 속 음유시인에 비유하다니,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어. 'His voice'를 두 번이나 반복하는 건 말문이 막힐 정도로 감동받았다는 뜻이야.
I tipped my head back and closed my eyes. I pictured a sky. It was blue black, soft and dense as fur.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하늘을 그려보았다. 털처럼 부드럽고 빽빽한, 검푸른 하늘이었다.
에리너가 노래에 취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어. 여기서부터는 현실이 아니라 에리너의 머릿속 이미지야. 하늘을 'Blue black(검푸른 색)'이라고 하고 'Soft and dense as fur(털처럼 부드럽고 빽빽한)'라고 묘사하는 감각적인 표현이 돋보여. 음악을 들으며 시각과 촉각까지 동원하는 공감각적 체험을 하고 있는 거지.
Across and over the expanse of night, into the velvet depths of it, light was scattered, enough for a thousand darknesses.
밤의 광활한 공간을 가로지르고 넘어서, 그 벨벳 같은 깊은 곳으로 빛이 흩뿌려졌다. 천 개의 어둠을 밝히기에 충분할 만큼.
에리너의 상상 속 우주 여행이 시작됐어. 'Velvet depths(벨벳 같은 깊은 곳)'라는 표현에서 밤하늘의 질감이 느껴지지? 'Thousand darknesses(천 개의 어둠)'라는 시적인 표현은 에리너의 내면에 있는 깊은 외로움이나 어둠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해. 그 어둠을 밝힐 만큼 충분한 빛이라니, 이 남자의 노래가 그녀에게 구원이라는 뜻이겠지.
Patterns revealed themselves; the eye, exquisitely dazzled, sought out snail- shell whorls and shattered pearls, gods and beasts and planets.
무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교함에 눈이 부신 시선은 달팽이 껍데기의 나선과 부서진 진주들, 신들과 짐승들, 그리고 행성들을 찾아내었다.
이제 에리너는 밤하늘의 별자리에서 온갖 형상을 찾아내고 있어. 'Snail-shell whorls(달팽이 껍데기 나선)'는 은하수를, 'Shattered pearls(부서진 진주)'는 흩뿌려진 별들을 묘사한 거겠지. 'Gods and beasts(신들과 짐승들)'는 별자리의 이름을 말하는 거야. 에리너의 상상력이 우주를 창조하고 있어.
As we stood still, yet we rotated, and, whilst turning, moved in a larger circle,
우리가 가만히 서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자전했고, 회전하는 동시에 더 커다란 원을 그리며 나아갔다.
에리너가 노래에 취해서 자기도 모르게 과학적인 우주 원리(자전과 공전)를 떠올리고 있어. 낭만적인 순간에 갑자기 지구의 회전 속도를 생각하다니 참 에리너답지? 사랑의 전율을 물리 법칙으로 해석하는 그녀만의 독특한 방식이야.
round and round the sun, and oh, the dizzying momentum of it...
태양 주위를 돌고 또 돌았다. 아, 그 어지러운 추진력이란...
태양 주위를 도는 공전의 이미지가 노래 소리와 겹치고 있어. 노래에 취한 기분을 우주적 가속도에 비유하는 거야. 'Dizzying momentum'은 사랑에 빠진 어지러움과 과학적인 운동 에너지를 동시에 말하는 중의적인 표현 같아.
The music stopped and there was a sudden, blurry movement. I stepped back, and quickly started to walk upstairs, my heart hammering.
음악이 멈췄고, 갑작스럽고 흐릿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나는 뒤로 물러나 재빨리 위층으로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심장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아, 낭만적인 우주 여행 끝! 집 주인이 움직이는 기척이 나니까 에리너가 화들짝 놀라서 도망치는 중이야. 'Heart hammering'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 도둑고양이처럼 엿듣다 들킬까 봐 무서워서 그러는 거겠지?
Nothing. I stood on the upper landing and waited for a few minutes. Nothing.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위층 복도에 서서 몇 분 동안 기다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
긴장감 넘치는 정적이야. 'Nothing'을 앞뒤로 배치해서 에리너가 얼마나 숨죽이고 상황을 살폈는지 강조하고 있어. 위층 복도(upper landing)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상황을 살피는 에리너의 모습, 왠지 귀엽지 않니?
I tiptoed down and placed myself outside his door again.
나는 발소리를 죽여 아래로 내려가 다시 그의 문 밖에 자리를 잡았다.
에리너는 포기를 몰라! 기척이 없자 다시 내려가서 문 앞에 서는(placed myself) 집요함 좀 봐. 'Tiptoed'라는 단어에서 들킬까 봐 조심하면서도 노래를 다시 듣고 싶은 간절함이 느껴져.
The music had started up once more, but I did not wish to disturb him.
음악이 다시 시작되었으나, 나는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노래 소리가 들리니까 에리너가 안심했어. 'Did not wish to disturb him'이라고 아주 고결한 척 말하지만, 사실은 벨을 누를 용기는 없고 그냥 엿듣는 걸로 만족하겠다는 소심한 팬심이지.
I was only there to see where he lived, after all... there was no harm in looking. Mission accomplished.
결국 나는 그가 어디에 사는지 보러 거기에 갔을 뿐이었다. 구경하는 건 해로울 게 없으니까. 임무 완료.
에리너, 지금 자기가 스토커가 아니라 무슨 비밀 요원인 줄 알아. 'Mission accomplished(임무 완료)'라니, 첩보 영화 한 편 찍은 기분인가 봐? 남의 집 이름판 탁본까지 떠놓고는 '해로울 게 없다(no harm)'고 자기합리화하는 모습이 정말 에리너답지 않니?
It was sheer spendthrift madness, but once on the street, I hailed a passing black cab to take me home.
그것은 순전한 낭비벽이자 미친 짓이었으나, 일단 거리로 나서자마자 나는 집으로 데려다줄 지나가는 블랙 캡을 불러 세웠다.
평소 버스만 타고 돈 한 푼 아끼는 에리너가 영국에서 제일 비싸기로 유명한 '블랙 캡'을 탔어! 지금 짝사랑 상대 집 앞에서 감성이 너무 폭발해서 지갑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거야. 이걸 'Spendthrift madness(낭비하는 광기)'라고 표현하는 게 너무 비장해서 웃프지 않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