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 it’s like when my doctor told me the story of these two brothers whose dad was a bad alcoholic.
하지만 이건 마치 의사 선생님이 나한테 아빠가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였던 두 형제의 이야기를 해줬을 때랑 비슷해.
찰리가 상담을 받으면서 들은 유명한 심리학적 비유를 가져오고 있어. 같은 환경에서 자라도 결과는 다를 수 있다는 걸 말하려는 복선이지. 의사 선생님이 찰리한테 꽤 인상 깊은 이야기를 해주셨나 봐.
One brother grew up to be a successful carpenter who never drank.
한 형제는 자라서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는 성공한 목수가 되었어.
두 형제 중 첫 번째 케이스야. 아빠를 반면교사 삼아서 완전 정반대의 건실한 삶을 선택한 거지. '난 절대 저렇게 안 살 거야'라는 의지가 대단했던 모양이야.
The other brother ended up being a drinker as bad as his dad was.
그런데 다른 형제는 결국 자기 아빠만큼이나 지독한 술꾼이 되고 말았지.
이번엔 정반대의 슬픈 결말이야. 아빠를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처럼, 싫어하던 아빠의 모습을 그대로 복사해버린 안타까운 상황이지.
When they asked the first brother why he didn’t drink,
사람들이 첫째 형제에게 왜 술을 마시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이제 사람들의 궁금증이 폭발하는 타이밍이야. '저런 아빠 밑에서 어떻게 이렇게 바르게 자랐지?' 하고 질문을 던진 거지. 대답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야.
he said that after he saw what it did to his father, he could never bring himself to even try it.
그는 아빠가 술 때문에 망가지는 걸 보고 나서는, 도저히 술을 마셔볼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고 대답했어.
이게 바로 반면교사의 정석이지. 아빠의 불행이 본인에게는 강한 경고가 된 거야. 술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뼛속 깊이 느낀 첫째의 진심이야.
When they asked the other brother, he said that he guessed he learned how to drink on his father’s knee.
사람들이 다른 형제에게 물었을 때, 그는 아마도 아빠의 무릎 위에서 술 마시는 법을 배운 것 같다고 말했어.
반면에 둘째는 아빠의 행동을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인 거야. 어릴 때 아빠 무릎에 앉아 술 마시는 아빠를 보며 자랐으니, 본인도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게 운명이라고 생각한 거지. 환경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대답이야.
So, I guess we are who we are for a lot of reasons. And maybe we’ll never know most of them.
그러니까 내 생각엔, 우리가 지금의 모습인 데는 수많은 이유가 있는 것 같아. 그리고 아마 우린 그 이유들 대부분을 평생 모를지도 몰라.
찰리가 드디어 득도했어! 알코올 중독자 아빠 밑에서 자란 두 형제 이야기를 듣고 깨달은 거지. 내가 왜 이런 성격인지, 왜 이런 상처가 있는지 구구절절 다 알 순 없어도, 그게 다 나름의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한 거야. 마음속의 '왜?'라는 물음표를 조금 내려놓은 느낌이지?
But even if we don’t have the power to choose where we come from, we can still choose where we go from there.
비록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선택할 힘은 없더라도, 거기서부터 어디로 갈지는 여전히 우리가 선택할 수 있어.
이 문장 완전 명언 제조기 아니니? 찰리가 과거의 상처나 가족사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미래의 방향키는 자기가 쥐고 있다는 걸 선언하고 있어. 태생은 랜덤이지만 목적지는 내가 정한다는 찰리의 힙한 마인드! 박수 세 번 시작!
We can still do things. And we can try to feel okay about them.
우린 여전히 무언가를 할 수 있어. 그리고 그 일들에 대해 괜찮다고 느끼려고 노력할 수도 있고.
큰 거 한 방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부터 하나씩 해나가겠다는 찰리의 소박한 다짐이야. 상황이 갑자기 판타지 영화처럼 완벽해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생각할 마음의 근육은 우리한테 있다는 거지. 찰리, 이제 진짜 다 컸네.
I think that if I ever have kids, and they are upset, I won’t tell them that people are starving in China or anything like that
나중에 내가 아이를 갖게 됐을 때 애들이 속상해한다면, 중국에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식의 말은 절대 하지 않을 거야.
어른들이 자주 하는 '야, 딴 사람들은 더 힘들어!'라는 비교 논법을 절대 안 쓰겠다는 찰리의 결심이야. 남의 불행과 비교해서 내 슬픔을 억누르는 게 얼마나 독인지 찰리는 뼈저리게 느꼈거든. 찰리 같은 아빠 있으면 속마음 털어놓기 정말 편하겠다!
because it wouldn’t change the fact that they were upset.
왜냐하면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애들이 속상하다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으니까.
맞어, 남이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 내가 아픈 건 팩트잖아. 찰리는 감정의 개별성을 존중해주고 싶은 거야. '내 슬픔의 주인공은 나!'라는 걸 인정해주는 멋진 철학이지.
And even if somebody else has it much worse, that doesn’t really change the fact that you have what you have.
그리고 비록 다른 누군가가 훨씬 더 힘든 상황일지라도, 네가 겪고 있는 일이 네 것이라는 사실은 정말이지 변하지 않아.
'네가 가진 건 네 거야'라는 말이 슬픔에도 적용된다는 사실. 찰리는 이제 자기 고통을 남의 것과 비교하며 '난 행복해야만 해'라고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기로 했어. 지금 네가 느끼는 그 감정이 세상에서 가장 실재하는 고통이라는 걸 깨달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