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s deciding what me means—me or the employees of the factory that makes Lexapro?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누가 결정하는 거죠? 나인가요, 아니면 렉사프로를 만드는 공장 직원들인가요?
와, 이 질문 진짜 날카롭다. 내 정체성을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제약회사 직원이 정한다는 게 말이 되냐는 항변이야. 약물 치료에 대한 에이자의 거부감이 단순히 맛 없어서가 아니었어.
It’s like I have this demon inside of me, and I want it gone, but the idea of removing it via pill is... I don’t know... weird.
내 안에 이 악마가 살고 있는 것 같고, 그것이 사라졌으면 좋겠으면서도, 알약을 통해 제거한다는 발상은... 뭐랄까... 이상하다.
에이자가 자기 마음속 괴로움을 '악마'라고 불러. 퇴마사라도 불러야 할 판인데, 겨우 알약 하나로 이 강력한 녀석을 쫓아낸다는 게 에이자 눈에는 너무 하찮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나 봐. 약 먹는 게 마치 SF 영화 속 세뇌 장치처럼 느껴지는 걸까?
But a lot of days I get over that, because I do really hate the demon.”
하지만 그 악마가 정말 싫기 때문에 많은 날들을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약 먹는 게 찝찝하고 이상해도, 일단 내 속을 갉아먹는 그 악마가 더 꼴 보기 싫으니까 '에라 모르겠다' 하고 약을 삼키는 날도 많다는 거야. 증오가 찝찝함을 이기는 순간이지! 에이자의 내면 정치가 아주 치열해.
“You often try to understand your experience through metaphor, Aza: It’s like a demon inside of you;
“에이자, 너는 종종 은유를 통해 네 경험을 이해하려고 하는구나. 네 안에 악마가 있는 것 같다는 식의 은유 말이야.”
싱 박사님이 에이자의 화법을 딱 짚어냈어. '은유(metaphor)' 성애자 에이자! 직접 말하기엔 너무 아프니까 비유라는 필터를 끼워서 세상을 보는 에이자의 습관을 분석해주고 계셔. 박사님 관찰력 거의 셜록 급인데?
you’ll call your consciousness a bus, or a prison cell, or a spiral, or a whirlpool, or a loop,
“너는 네 의식을 버스나 감옥, 혹은 나선이나 소용돌이, 아니면 고리라고 부르기도 하지.”
박사님이 그동안 에이자가 쏟아냈던 창의적인(?) 비유들을 복습해주고 있어. 버스부터 소용돌이까지, 에이자의 머릿속은 거의 테마파크 수준인걸? 근데 즐겁지가 않고 괴롭다는 게 함정이지. 박사님 기억력 진짜 좋으시다.
or a—I think you once called it a scribbled circle, which I found interesting.” “Yeah,” I said.
“아니면—언젠가 너는 그것을 마구 휘갈겨 그린 원이라고 부른 적도 있지. 참 흥미롭다고 생각했단다.” “네,” 내가 말했다.
'휘갈겨 그린 원(scribbled circle)'이라니, 비유의 정점을 찍었네! 박사님은 이게 아주 흥미롭다고 칭찬(?)하는데, 에이자는 민망한지 짧게 대답하고 말아. 문학 소녀 에이자의 부끄러움이 느껴져서 귀여운 장면이야.
“One of the challenges with pain—physical or psychic—is that we can really only approach it through metaphor.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고통이 가진 난제 중 하나는 우리가 오직 은유를 통해서만 그것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란다.
싱 박사님이 갑자기 철학 강의를 시작하셨어.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하는 게 왜 그렇게 힘든지 설명해 주시는데, 고통은 직접적으로 설명하기가 불가능해서 자꾸 비유를 쓰게 된다는 거야. 박사님 말씀이 점점 심오해지네!
It can’t be represented the way a table or a body can. In some ways, pain is the opposite of language.”
고통은 탁자나 신체처럼 표현될 수 없다. 어떤 면에서 고통은 언어의 반대말이다.”
눈에 보이는 탁자나 내 몸은 그냥 설명하면 되는데, 고통은 그게 안 된다는 거야. 박사님은 고통을 '언어의 반대말'이라고 부르셔. 언어는 소통을 위한 건데 고통은 소통을 단절시켜서 그런 걸까?
She turned to her computer, shook her mouse to wake it up, and then clicked an image on her desktop.
그녀는 컴퓨터 쪽으로 몸을 돌려 마우스를 흔들어 깨우더니, 바탕 화면에 있는 이미지를 클릭했다.
싱 박사님이 말로만 설명하려니 답답하셨는지 컴퓨터를 켜셨어. 절전 모드에 빠진 마우스를 '흔들어 깨우는(shook... to wake it up)' 묘사가 마치 잠자는 강아지 깨우는 것 같아서 재밌지 않아?
“I want to share something Virginia Woolf wrote: ‘English, which can express the thoughts of Hamlet and the tragedy of Lear,
“버지니아 울프가 쓴 글귀를 나누고 싶구나. ‘햄릿의 사유와 리어왕의 비극을 표현할 수 있는 영어조차도,
싱 박사님이 영문학의 전설 버지니아 울프를 소환하셨어.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니 리어왕이니 하는 엄청난 사상과 비극도 다 표현해내는 게 바로 영어인데... 근데 정작 중요한 건 표현을 못한대. 울프 언니의 뼈 때리는 통찰력, 감상해 볼까?
has no words for the shiver and the headache... . The merest schoolgirl, when she falls in love,
오한과 두통을 표현할 단어는 가지고 있지 않다... . 아주 평범한 여학생조차 사랑에 빠지면,
와, 여기가 진짜 포인트야. 햄릿의 고뇌는 잘도 말하면서, 정작 감기 걸려서 몸이 덜덜 떨리는 '오한(shiver)'이나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headache)'은 딱 맞는 단어가 없다는 거야. 고통의 소외라고나 할까? 반면에 사랑에 빠진 소녀는 시인들을 빌려와서 자기 마음을 잘도 말한대.
has Shakespeare or Keats to speak her mind for her;
셰익스피어나 키츠를 빌려 자신의 마음을 대신 말하게 할 수 있지만;
사랑에 빠지면 셰익스피어나 키츠 같은 위대한 시인들의 시구를 인용해서 자기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거야. '내 마음은 호수요~' 이런 식으로 말이지. 사랑은 빌려 쓸 수 있는 예쁜 단어들이 참 많은데, 고통은 왜 그렇지 못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