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spending time with his writing felt like spending time with him, only not as scary.
그리고 그의 글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와 직접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단지 그만큼 두렵지 않았을 뿐이다.
직접 만나면 어색하고 겁나지만, 글을 통해서는 데이비스의 영혼과 오붓하게 데이트하는 기분이라는 거야. 텍스트가 주는 묘한 안정감이랄까?
So I clicked over to the poems section. The first one went:
그래서 나는 시 코너를 클릭해 들어갔다. 첫 번째 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에이자가 데이비스의 일기장을 다 털고(?) 이제 시 코너로 넘어가는 역사적인 순간이야. 남의 블로그 탐방은 역시 카테고리 하나하나 다 눌러봐야 제맛이지!
My mother’s footsteps were so quiet I barely heard her leave.
어머니의 발소리는 너무나 조용해서 그녀가 떠나는 소리를 거의 듣지 못했다.
데이비스가 쓴 시의 첫 구절이야. 세상을 떠난 엄마를 회상하는 대목인데, 발소리가 조용했다는 건 그만큼 죽음이 예고 없이, 소리 없이 찾아왔다는 슬픈 은유 같기도 해.
Another: You must never let truth get in the way of beauty, or so e. e. cummings believed.
또 다른 구절. 진실이 아름다움을 방해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혹은 e. e. 커밍스는 그렇게 믿었다.
데이비스의 블로그에는 이런 심오한(?) 구절들이 많아. 진실보다 아름다움이 중요하다니, 데이비스가 얼마나 낭만주의자인지, 아니면 현실 도피 중인지 보여주는 대목이지.
“This is the wonder that’s keeping the stars apart,” he wrote of love and longing.
“이것은 별들을 서로 떨어뜨려 놓는 경이로움이다.” 그는 사랑과 갈망에 대해 그렇게 썼다.
별들이 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지에 대한 시적인 해석이야. 사랑과 그리움도 결국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존재한다는 심오한 드립... 아니, 철학이 느껴지지 않니?
That often got him laid I’m sure, which was the poem’s sole intent.
분명 그것 덕분에 그는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을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그 시의 유일한 목적이었으리라.
에이자가 시인 커밍스의 시적 허용에 대해 아주 시니컬하게 평하고 있어. 아름다움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건 결국 누군가를 꼬시기 위한 수작이었다는 거지. 낭만 파괴자 에이자의 날카로운 통찰력이야!
But gravity differs from affection: Only one is constant.
하지만 중력은 애정과 다르다. 오직 하나만이 불변할 뿐이다.
사랑은 변하지만 중력은 변하지 않는다는 차가운 이성이 돋보이는 문장이야. 사랑의 유효기간보다 지구의 인력이 더 든든하다는 거지. 과학적인데 왠지 모르게 씁쓸하네.
And then the first poem, written on the same day as the first journal entry, two weeks after his father’s disappearance.
그리고 첫 번째 시. 아버지가 실종된 지 2주일 뒤, 첫 번째 일기를 쓴 날과 같은 날에 쓰인 시였다.
데이비스의 아빠가 사라지고 나서 멘붕이 왔을 때 쓴 글들이야. 슬픔을 시와 일기로 승화시킨 거지. 날짜까지 딱딱 맞춘 걸 보니 당시 데이비스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했을지 짐작이 가네.
He carried me around my whole life—picked me up, took me here and there,
그는 내 평생 나를 데리고 다녔다. 나를 들어 올리고, 여기저기 데려갔다.
데이비스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이야. 어릴 때 목무등 태워주고 여기저기 구경시켜주던 다정한 아빠의 모습이 그려지지? 'carry around'라는 표현에서 아빠의 든든한 등판이 느껴져.
said Come with me. I’ll take you. We’ll have fun. We never did.
그는 같이 가자, 내가 데려다줄게, 재미있을 거야, 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그러지 못했다.
아빠의 약속은 많았지만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는 거야. 'We never did'라는 짧은 문장에서 오는 배신감과 공허함이 장난 아니지. 희망 고문만 실컷 당한 데이비스의 어린 시절이 보이는 것 같아 짠하네.
You don’t know a father’s weight until it’s lifted.
아버지라는 존재의 무게는 그것이 제거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다.
데이비스 아빠가 실종된 후의 심정을 담은 시의 마지막 구절이야. 아빠라는 거대한 존재감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나를 짓누르고 있었는지, 혹은 얼마나 컸는지 깨닫게 된다는 아주 묵직한 표현이지.
As I reread the poem, my phone buzzed. Davis. Hi.
내가 그 시를 다시 읽고 있을 때, 휴대폰이 징 울렸다. 데이비스였다. 안녕.
에이자가 데이비스 블로그 훔쳐보면서 감성에 젖어있는데, 갑자기 당사자한테 연락이 온 거야! 마치 뒤에서 누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소름 돋는 타이밍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