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ook it off and let Jackie stick the cannula in her nose and breathe.
나는 캐뉼라를 벗어 재키가 자기 코에 끼우고 숨을 쉬어보게 해주었다.
위생이나 타인의 시선보다 아이의 호기심을 먼저 챙기는 결단력이 대단합니다. 이 순간만큼은 병원 밖 평범한 언니가 된 기분일지도 모르겠네요.
“Tickles,” she said. “I know, right?” “I think I’m breathing better,” she said. “Yeah?” “Yeah.”
“간지러워요.” 아이가 말했다. “그렇지?” “숨이 더 잘 쉬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 “네.”
코가 간질거린다는 아이의 솔직한 소감이 미소를 자아냅니다. 기분 탓이겠지만 숨이 더 잘 쉬어지는 것 같다는 말에 헤이즐도 마음이 따뜻해졌을까요?
“Well,” I said, “I wish I could give you my cannula but I kind of really need the help.”
“있지,” 내가 말했다. “이 캐뉼라를 너한테 주고 싶지만, 나도 이게 없으면 좀 힘들거든.”
아이에게 산소를 양보하고 싶지만 본인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 어쩔 수 없습니다. 웃으며 거절하는 와중에도 묘한 현실의 씁쓸함이 느껴지네요.
I already felt the loss. I focused on my breathing as Jackie handed the tubes back to me.
나는 벌써부터 공백을 느꼈다. 재키가 튜브를 다시 건네주는 동안 나는 숨을 쉬는 데 집중했다.
잠깐의 양보였지만 폐가 느끼는 산소의 공백은 즉각적이고 냉정합니다. 재키를 보며 웃으면서도 몸은 필사적으로 다음 숨을 기다리고 있네요.
I gave them a quick swipe with my T-shirt, laced the tubes behind my ears, and put the nubbins back in place.
나는 티셔츠로 튜브를 쓱 닦고는 귀 뒤에 걸어 다시 콧구멍 속으로 끼워 넣었다.
티셔츠로 슥 닦아서 다시 끼우는 모습이 익숙하면서도 덤덤해 보입니다. 이제는 신체의 일부가 되어버린 기계 장치를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네요.
“Thanks for letting me try it,” she said. “No problem.”
“해보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아이가 말했다. “아냐, 괜찮아.”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떠나는 꼬마와의 짧은 만남이 훈훈하게 마무리됩니다. 쇼핑몰에서의 피로감을 씻어내기엔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을까요?
“Jackie,” her mother said again, and this time I let her go.
“재키,” 아이 엄마가 다시 불렀고, 이번에 나는 아이를 보내주었다.
재키는 엄마 손을 잡고 평범한 아이들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헤이즐은 그 뒷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이네요.
I returned to the book, where Staff Sergeant Max Mayhem was regretting that he had but one life to give for his country,
나는 다시 소설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맥스 메이헴 상사는 조국을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뿐인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다시 소설 속 치열한 전장으로 복귀한 주인공입니다. 현실보다 더 자극적인 전쟁터가 오히려 마음 편하게 느껴지는 건 묘한 아이러니네요.
but I kept thinking about that little kid, and how much I liked her.
하지만 나는 계속 그 아이를 생각했고, 내가 그 아이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떠올렸다.
책을 읽으면서도 재키의 잔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모양입니다. 아무런 편견 없이 다가와 준 아이의 존재가 꽤 묵직한 여운을 남겼나 봐요.
The other thing about Kaitlyn, I guess, was that it could never again feel natural to talk to her.
케이틀린에 대해서는, 아마도 그녀와 대화하는 것이 다시는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문제였다.
케이틀린과의 대화가 불편했던 이유를 이제야 명확히 깨달은 것 같죠. 아무리 친해도 환자와 비환자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이 존재하니까요.
Any attempts to feign normal social interactions were just depressing because it was so glaringly obvious
평범한 사회적 교류를 흉내 내보려는 모든 시도는 그저 우울할 뿐이었다. 너무나 명백했기 때문이다.
평범함을 연기하는 것이 얼마나 에너지를 갉아먹는 일인지 잘 보여줍니다. 모두가 나를 배려하지만 그 배려가 때로는 숨을 막히게 할 수도 있겠죠.
that everyone I spoke to for the rest of my life would feel awkward and self-conscious around me,
내가 남은 평생 대화하게 될 모든 사람이 내 주변에서 어색함을 느끼고 남의 눈치를 볼 것이라는 사실이 말이다.
타인의 눈치를 살피며 대화하는 건 정신적 피로도를 급격히 높이는 지름길입니다. 평생 이런 시선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 꽤나 무겁게 다가오네요. (사람들의 그 어색한 표정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아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