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while I figured she was either in the mall or in the parking lot, I still wanted the next two hours to myself.
엄마가 쇼핑몰 안이나 주차장 어딘가에 있을 거란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남은 두 시간은 온전히 혼자 보내고 싶었다.
엄마와의 거리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 미묘한 지점이 가장 평화롭죠. 두 시간 동안의 자유는 헤이즐에게 어떤 보약보다 더 달콤한 휴식이 될 겁니다. (엄마한텐 미안하지만 지금은 베개와의 몰아일체가 필요한 시간이야 ㅋ)
I liked my mom, but her perpetual nearness sometimes made me feel weirdly nervous.
엄마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끊임없는 근접성은 때때로 나를 기묘하게 불안하게 만들었다.
부모님의 과도한 관심과 보호는 때로 공기보다 무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24시간 누군가의 시야 안에 있다는 건 꽤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니까요. 주인공도 잠시 숨을 고를 틈이 필요한 모양이네요.
And I liked Kaitlyn, too. I really did. But three years removed from proper full-time schoolic exposure to my peers,
케이틀린도 좋아했다. 정말이다. 하지만 평범한 학교생활에서 멀어진 지 3년이나 지나자 또래들과는 괴리감이 느껴졌다.
3년이라는 세월은 친구들과의 공통분모를 지우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의 거리가 벌어지는 게 주인공에게는 더 씁쓸한 현실일지도 모르겠네요.
I felt a certain unbridgeable distance between us. I think my school friends wanted to help me through my cancer,
우리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어떤 거리가 느껴졌다. 학교 친구들은 내가 암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 했다.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친구들의 예쁜 마음과 실제로 줄 수 있는 도움 사이의 간극이 참 큽니다. 그 선의가 오히려 주인공에게는 넘기 힘든 벽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겠네요.
but they eventually found out that they couldn’t. For one thing, there was no through.
하지만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도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이 병에 '통과'나 '극복'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암이라는 긴 터널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친구들은 미처 몰랐던 걸까요. '극복'이라는 단어가 주인공에게 얼마나 무겁고 공허하게 들릴지 상상조차 하기 힘든 밤입니다.
So I excused myself on the grounds of pain and fatigue, as I often had over the years when seeing Kaitlyn or any of my other friends.
그래서 지난 몇 년간 케이틀린이나 다른 친구들을 만날 때 늘 그랬듯이, 통증과 피로를 핑계로 자리를 떴다.
몸이 아픈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가끔은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헤이즐의 노련함이 돋보입니다. 매번 진실만 말하며 살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하다는 걸 일찍 깨달은 것 같죠?
In truth, it always hurt. It always hurt not to breathe like a normal person, incessantly reminding your lungs to be lungs,
사실, 늘 아팠다. 평범한 사람처럼 숨 쉬지 못하는 것, 폐에게 제발 폐답게 굴라고 끊임없이 다그쳐야 하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러웠다.
숨 쉬는 게 권리가 아니라 의식적인 의무가 되어버린 고통스러운 상황입니다. 매 초마다 폐에게 명령을 내려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니 얼마나 고단한 삶일까요.
forcing yourself to accept as unsolvable the clawing scraping inside-out ache of underoxygenation.
산소 부족으로 몸 안팎이 긁히고 찢기는 듯한 통증을 해결 불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고통 말이다.
산소가 모자라 몸 안이 타들어 가는 듯한 감각은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고통이죠. 해결할 수 없는 아픔을 평생의 동반자로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 참 가혹하게 느껴집니다.
So I wasn’t lying, exactly. I was just choosing among truths.
그러니 딱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그저 여러 진실 중 하나를 골랐을 뿐이다.
거짓말이 아니라 단지 여러 진실 중에서 가장 편리한 패 하나를 꺼냈을 뿐이라는 논리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100% 순수 진실보다 이런 전략적 선택이 필요할 때가 많죠.
I found a bench surrounded by an Irish Gifts store, the Fountain Pen Emporium, and a baseball-cap outlet—
나는 아일랜드 선물 가게와 만년필 상점, 야구 모자 할인점들로 둘러싸인 벤치 하나를 찾아냈다.
화려한 매장들 사이에서 어딘가 투박한 가게들로 둘러싸인 구석 자리를 잘도 찾아냈네요. 쇼핑몰 안에서 나만의 은신처를 찾는 주인공의 능력이 대단합니다.
a corner of the mall even Kaitlyn would never shop, and started reading Midnight Dawns.
세련된 케이틀린이라면 절대 쇼핑하지 않을 몰의 구석진 모퉁이에서, 나는 '미드나잇 던'을 읽기 시작했다.
세련된 친구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장소에서 즐기는 독서가 왠지 더 달콤하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책에 몰입하는 이 순간이 주인공에게는 최고의 사치 아닐까요? (여기라면 케이틀린도 나를 절대 찾지 못할 거야 ㅋ)
It featured a sentence-to-corpse ratio of nearly 1:1, and I tore through it without ever looking up.
그 소설은 문장 하나당 시체 한 구가 나올 정도의 비율을 자랑했고, 나는 고개 한번 들지 않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문장 하나에 시체 한 구라니 정말 화끈하고 자극적인 전개의 소설이네요. 주인공이 왜 그렇게 고개도 안 들고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는지 십분 이해가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