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id the totally middle-schooly thing wherein I put my hand on the couch about halfway between us
나는 우리 사이의 소파 중간쯤에 손을 올려두는, 전형적인 중학생 같은 짓을 저질렀다.
손을 소파 가운데 슬쩍 올리는 전략은 동서고금 막론하고 국룰이죠. 중학생 같은 귀여운 작전에 어거스터스의 반응이 궁금해집니다. (이거 모르면 연애 세포 영혼가출한 거야 ㅋ)
to let him know that it was okay to hold it, but he didn’t try.
손을 잡아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었지만, 그는 시도하지 않았다.
철벽남 어거스터스가 신호를 못 읽은 걸까요? 아님 밀당의 고수라서 모른 척하는 걸까요? 헤이즐의 머쓱한 손이 민망해지네요.
An hour into the movie, Augustus’s parents came in and served us the enchiladas, which we ate on the couch, and they were pretty delicious.
영화가 시작된 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어거스터스의 부모님이 들어와 엔칠라다를 주셨다. 우리는 소파에 앉아 그걸 먹었는데 꽤 맛있었다.
갑자기 분위기 엔칠라다 파티입니다. 부모님의 등장으로 미묘한 텐션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드네요.
The movie was about this heroic guy in a mask who died heroically for Natalie Portman,
영화는 가면을 쓴 영웅적인 남자가 나탈리 포트만을 위해 장렬히 전사하는 내용이었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 이야기를 하는 중이군요. 나탈리 포트만의 미모가 개연성인 그 영화 맞습니다.
who’s pretty badass and very hot and does not have anything approaching my puffy steroid face.
그녀는 아주 멋지고 섹시했지만,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부어오른 내 다람쥐 같은 얼굴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탈리 포트만 앞에서 헤이즐은 의문의 1패를 적립 중이네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자꾸만 작아 보이는 기분일까요?
As the credits rolled, he said, “Pretty great, huh?” “Pretty great,” I agreed, although it wasn’t, really.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그가 말했다. "진짜 멋지지, 그치?" "정말 멋졌어." 나는 동의했지만 사실 꼭 그렇지는 않았다.
영화가 별로여도 '멋졌어'라고 해주는 자본주의 미소가 필요할 때가 있죠. 사랑은 가끔 취향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It was kind of a boy movie. I don’t know why boys expect us to like boy movies. We don’t expect them to like girl movies.
일종의 '남자 영화'였다. 왜 남자들은 자기들이 그런 영화를 좋아하면 우리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우린 그들에게 '여자 영화'를 좋아해 달라고 기대하지 않는데 말이다.
남자들의 '남자 영화' 강요는 인류 역사의 난제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억지로 로맨틱 코미디를 같이 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죠. (취향 존중 좀 해줘라 거스야 ㅠ)
“I should get home. Class in the morning,” I said.
"나 이제 가야겠어. 아침에 수업이 있거든." 내가 말했다.
내일 수업 핑계를 대며 자리를 뜨려는 헤이즐입니다. 이대로 헤어지기엔 아쉬운 분위기인데 엉덩이가 무거워지지 않나요?
I sat on the couch for a while as Augustus searched for his keys.
어거스터스가 차 열쇠를 찾는 동안 나는 소파에 잠시 앉아 있었다.
열쇠를 찾는 어거스터스를 기다리는 이 짧은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질 걸요. 마지막 작별 인사가 어떻게 끝날지 기대됩니다.
His mom sat down next to me and said, “I just love this one, don’t you?”
어거스터스의 엄마가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난 이 문구가 정말 좋단다, 너도 그렇지?"
어거스터스 어머니의 취향이 아주 확고하시네요. 처음 본 아들 친구에게 명언부터 영업하시는 중입니다.
I guess I had been looking toward the Encouragement above the TV, a drawing of an angel with the caption Without Pain, How Could We Know Joy?
나는 TV 위에 걸린 '격려의 말'을 보고 있었나 보다. 거기엔 천사 그림과 함께 '고통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기쁨을 알 수 있겠는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집안 곳곳이 긍정 에너지로 도배되어 있군요. 왠지 숨쉬기 운동 국가대표인 저도 저 집에 가면 경건해질 것 같습니다.
(This is an old argument in the field of Thinking About Suffering,
(이것은 '고통에 관한 사유'라는 분야에서 아주 오래된 논쟁이다.)
고통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이 시작되네요. 헤이즐은 이런 뻔한 위로 문구를 좋아하지 않는 눈치입니다.